지역 제조업체들이 속속 중소기업을 졸업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속내는 전혀 기쁘지 않다. 기업체계를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분류할 때 중견기업은 정부의 산업정책에서 소외돼 왔다는 불만이 높다. 열심히 회사를 키워 중소기업을 졸업한 순간 각종 지원과 혜택이 없어지고 '대기업'으로 규제받기 때문이다.
◆중견기업 잇따라 도약
차부품업체인 에스엘은 지난해 10월부터 중소기업 졸업 유예기간이 시작됐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3년 동안 '자본금 80억 원 또는 상시종업원 300인'이라는 기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중소기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에스엘은 자본금이 78억 원에서 141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중소기업 기준을 벗어나게 됐다. 에스엘 관계자는 "중소기업으로서 가장 큰 혜택은 완성차업계에 납품하면 대금을 빨리 받는 것이었는데 중소기업에서 졸업하면 납품대금을 상대적으로 늦게 받게 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차부품업체인 세원물산은 올해 말 중소기업을 졸업한다. 내년부터 이제까지 받아온 법인세 혜택이 없어지는데다 정부기관과 지자체의 자금지원을 더 이상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에 공정거래감시 등 대기업 규제를 받게 된다. 세원물산 관계자는 "현행 중소기업 기준은 과거에 설정된 것"이라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중견기업으로 분류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서공단내 삼익THK는 올해부터 중소기업을 졸업했다. 중소기업 유예기간 3년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액 1천300억 원을 올렸지만 대기업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삼익THK 관계자는 "중소기업에서 벗어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의 함정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의 도약을 꺼리는 이유는 법적으로 중소기업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세금혜택 등 각종 지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회사를 세우고 조직을 슬림화해 계속 중소기업 울타리에 머무르는 업체도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중소기업 졸업유예 기업 164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결과, 10곳 중 4곳이 중기 범위 유지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 적이 있으며, 10곳 중 2곳 꼴로 외주제작과 임시직 채용을 늘려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들이 정책자금 등에서 수혜를 누림에 따라 창업초기의 혁신형 기업이나 영세한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업자원부 보고서에 따르면 종업원 수가 300~320명에서 320~340명으로 넘어갈 때와 매출액이 400억~450억 원에서 450억~500억 원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기술 및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비약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현실은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중소기업지원 자금은 한정돼 있는데 규모가 큰 기업들이 중소기업 지위를 누리는 문제점도 있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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