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구미의 힘

금오산과 천생산이 병풍처럼 싸안고 낙동강이 도시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구미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가뭄이나 홍수 피해도 거의 없다. 신라시대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파된 곳으로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세운 桃李寺(도리사)가 있다. 명문거족인 인동 장씨와 선산 김씨의 관향이기도 하다. 구미는 조선조 성리학을 꽃피운 길재, 김숙자, 김종직 등의 학자를 배출했고, 사육신인 하위지를 비롯, 구한말 의병대장 허위 등 숱한 우국지사를 낳았다. 가까이는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났다. 그래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는 이중환의 擇里志(택리지) 기록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지는 곳이다.

구미시가 시 승격 30주년을 맞았다.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합쳐져 시가 된 지 올해로 30년이 된 것이다. 시 승격 당시 7만 2천여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39만여 명으로 늘어 경북 도내에서 포항시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됐다.

사람으로 치면 공자가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고 말한, 한창 물오른 시기다. 청년기를 벗어나 사회 각계에서 손발노릇을 하는 때인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구미는 평균 연령 30세, 30대 이하가 도시 전체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젊은 도시다. 경북도 내 상당수 지역이 고령화의 덫에 갇혀 고민하는 터에 구미는 창창한 젊음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젊음이 산업역군으로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구미가 70년대 초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최대의 수출기지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산업과 디스플레이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1999년 전국 단일공단 처음으로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한 구미국가산업단지는 2007년에 35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중 흑자만 220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 흑자 170억 달러를 훌쩍 뛰어 넘었다. 전국 수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구미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런 구미가 서른 살의 젊음을 무기로 한국의 디지털'IT산업을 이끌며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우뚝 선 명품도시 구미가 눈앞에 그려진다.

홍석봉 중부본부장 hsb@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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