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은 영어시대?-교사.학부모 고민

갑자기 바뀌니 뭐부터 해야할지…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 발표 이후 대구 교직 사회와 학부모들은 불만과 불안, 혼란에 휩싸였다. 인수위 안에 대한 교사 불신이 쌓이고 있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영어 공교육이 한 번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급하게 바뀌니 뭐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교사들의 고민

"국내외 영어 교육과정 이수자,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교사자격증 소지자, 전문직 등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별다른 검증 없이 영어 보조교사 등으로 뽑겠다는 인수위 안부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대구 중구 한 초교 담임 교사는 "인수위 안은 '영어실력만 키우면 다'라는 위험한 발상이다."며 "교사 본연의 인성 교육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구 북구 한 초교 교사는 "초교 때부터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도 의문"이라며 "우리말도 서툰 아이들이 영어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달서구 한 중학교 영어 교사도 "영어 실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아이들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라."며 "영어수업 시간이 아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성구의 한 초교 영어 전담 교사는 "초교쯤이야 영어수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구 전체 초교 영어 전담교사 가운데 영어로 말하는 수업이 가능한 교사는 아마 50%를 넘지 않을 것"이라며 "담임을 맡지 않아 수당이 적은 영어 전담 교사의 열악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교단 경력 10년이 넘는 한 중학교 영어 교사는 "솔직히 나이 든 영어 교사들 중에는 수업시간 내내 영어로 말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상당수"라며 "능력의 차이가 어떻게 작용할 지 벌써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학부모들의 고민

수성구에 위치한 영어 전문서점'잉글리시 하우스'. 점심시간 무렵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김효영(38·여·가명) 씨도 8살 딸과 함께 영어 동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김 씨는"5학년 큰 아이도 5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 두 아이에게 각각 80만 원 정도의 영어 사교육비를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번 영어 정책에 대해'찬성'입장을 밝혔다. 아이가 배운 영어회화를 학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김 씨는'이제 영어 사교육비가 다소 줄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인수위의 영어교육 강화 방안이 잇따라 발표되자, 학부모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어 공교육이 강화된다는 점에는 찬성이지만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사교육에 휘둘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박경미(38·여) 씨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박 씨는"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죽은 영어였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제대로된 영어 공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중·고생 자녀를 둔 박미경(46·대구 수성구 만촌동) 씨는"영어교육을 공교육에 비중을 두는 것은 찬성하지만 여러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당장 대학 보내기 위해 과외를 더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된다."는 박 씨는 "정책은 이상적이지만 학교 여건상 선생님들의 수업 능력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학부모들의 걱정"이라고 전했다. 하향 평준화 정책은 반대해왔지만 예고된 정책이 너무 획기적이어서 학원만 발전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 잉글리시 하우스 이강수 사장은 혼란스러운 시장의 반응을 그대로 전했다."영어관련 정책이 쏟아지자 당장 어느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요. 차근차근 영어를 접하게 해주겠다던 학부모들도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자 갑자기 조급해지고 있어요. 지금은 교육 주체 모두가 혼란스러운 시점입니다."

이상준 all4you@msnet.co.kr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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