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큼 핸드볼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적이 또 있었을까! 가는 곳마다 핸드볼 이야기로 꽃이 피고 있다. 지난 달 29,30일 일본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남녀핸드볼 아시아 예선전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응원 열기는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300만 관객을 훌쩍 넘었다.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외로이 게임을 치르다보니 '한대(寒帶)볼'이라 불리는 핸드볼! 영화와 올림픽 출전을 위한 재경기로 후끈 달아오른 핸드볼 열기를 두고, 핸드볼인들은 반가워하면서도 내심 걱정도 앞서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핸드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가 금세 사그라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앞장 선 여자핸드볼 국가대표인 대구시청 안정화(27) 선수와 팀 동료인 백승희(24)'송해림(23) 선수를 만났다. 대구실내체육관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서 동장군을 떨쳐버리는 열기가 뿜어나왔다.
◇영화 '우생순', 반만 닮았더군요!
핸드볼 열기에 불을 지핀 영화 '우생순' 이야기부터 꺼냈다. 세 선수 모두 영화를 눈여겨 봤단다. "김정은, 문소리 등 여자배우들이 핸드볼 하는 폼은 '제법' 그럴듯하더군요. 수 개 월이나 열심히 연습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운동하는 강도는 훨씬 '센데도' 영화에는 덜 담긴 것 같아요. 선수들의 고생과 애환도 약하게 표현된 것 같구요."(안정화) "영화와 현실이 반반 정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녀 선수끼리 애정이 싹틀 가능성은 있지만 영화처럼 핸드볼을 가르치는 감독 선생님과 선수 사이에 애정 전선이 생긴다는 것은 어렵지요."(백승희)
지난 해 가을 중동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뺏긴 베이징행 티켓을 우여곡절 끝에 되찾은 데 대해 안 선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게 돼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일본까지 원정와 뜨겁게 응원해주신분들 덕분에 힘이 났어요. 관중 1만여 명이 내뿜는 열기가 정말 뜨거웠어요."
국가대표팀에서 라이트 윙(R.W)으로 활약하는 안 선수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핸드볼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촉구', 이목을 끌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보면 관중이 참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회인 핸드볼큰잔치에도 관계자나 친척들만 찾아오는 실정이지요. 선수들이 땀흘려 연습한 뒤 대회에 나서는 만큼 앞으로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어요."
핸드볼 열기 덕분에 4일 안동에서 열린 핸드볼큰잔치엔 평소보다 관중이 10배나 늘었다. 그러나 관중 수는 고작 500여 명에 그쳤다. 안 선수를 비롯한 핸드볼인들의 바람처럼 유럽이나 일본처럼 1~2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꽉 채우기에는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다.
◇하루 5, 6시간 훈련, 병원 다니는 게 일과!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은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아테네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아픔'을 줬던 덴마크는 예선 탈락했다. 유럽이나 러시아 등의 체격좋은 선수들을 만날 때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게 2005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안 선수의 토로다. "제 키가 162cm인데 180cm에 이르는 유럽이나 러시아 선수들과 맞닥뜨리면 솔직히 주눅이 들지요. 키도 크고 힘도 좋고, 스피드와 기술도 거의 우리 수준에 육박했지요. 결국 정신력과 조직적인 팀플레이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어요."
핸드볼은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격렬한 운동이다보니 부상 위험도 매우 높다. 송해림 선수는 국가대표로 뽑혀 태릉에서 훈련하다 발목을 다쳐 1년 여만에 다시 코트에 섰다. "회복이 더딜 때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도 몰려왔어요. 언니와 동료, 후배들의 격려 한 마디가 다시 코트에 서는 데 큰 힘이 됐지요. 핸드볼을 다시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핸드볼큰잔치 4강전에서 송 선수는 10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날개를 힘껏 펼쳤다. 핸드볼 선수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곳은 발목과 무릎. 워낙 부상 위험이 높다보니 선수들은 한 두군데 쯤은 아픈 곳을 달고 산다. 하루 5~6시간에 이르는 연습을 빼면 병원 다니는 게 일과일 정도다.
◇외국에선 '왕비'로 대접받는 선수들!
전국에서 강호로 손꼽히는 대구시청 여자핸드볼팀 선수는 모두 16명. 1981년생부터 90년생까지 10대, 20대로 구성돼 있다. 영화 '우생순'의 주역인 아줌마 선수들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미혼. 안정화 선수는 강원 태백, 백승희 선수는 전북 부안, 송해림 선수는 인천 출신이다.
기숙사에서 같이 살며 숙식과 운동을 함께 하다보니 선수들은 친자매처럼 살가운 정을 나눈다. 백 선수는 "24시간 같이 생활하다보니 선수들 사이에 끈끈한 정이 흐른다."고 했다. 격렬한 운동인 핸드볼을 하는 백 선수의 취미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십자수. 또 시간이 날 때면 동료들과 함께 대구 시내에 나와 삼계탕이나 찜갈비, 삼겹살, 자장면 집을 즐겨 찾는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세 선수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 였는지'를 물었다. "수지고교 때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지요."(백) "2003년 핸드볼큰잔치에서 신인상을 받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지요."(송) "대구시청에 입단한 이후 핸드볼큰잔치에서 우승한 게 최고의 순간입니다."(안)
국내 여건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유럽이나 일본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다. 대구시청에서도 4명이 해외로 진출했다. 유럽무대에서 우리 선수들은 '왕비' 대접을 받고 있다. 연봉 1억 원 이상에 주택과 승용차 그리고 아이들 교육까지 책임져 준다는 것. 우리나라 실업팀의 연봉은 유럽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돈이 되지 않는 종목이기에 세 선수들은 '핸드볼 커플'은 원치 않는다. 나중에 자녀들이 핸드볼을 하려고 하면 말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핸드볼에 대한 열정은 불처럼 뜨겁다. "핸드볼 만큼 올림픽 등에서 국위를 선양한 종목이 또 있나요.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유럽처럼 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다만 텅빈 관중석이 조금 더 채워지길 바랄 뿐이지요. 많은 분들이 경기장에 오셔서 스피디하고 골도 많이 터지는 핸드볼의 매력을 느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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