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마다 있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두세대씩 가지고 있는 승용차, 식구들마다 들고 다니는 개인 휴대폰, 어딜 가나 넘쳐나는 음식….
과잉생산의 시대다. 모자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할까?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관심을 가질까?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대목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명쾌한 해답이 있다. 지난해 말 나온 책 '러브마크(lovemark) 이펙트'에서 세계적인 광고회사 사치&사치(Saatchi & Saatchi)의 회장 케빈 로버츠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은 제품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누군가 자신의 관심사를 건드리며 심리적 만족감을 줄 때 비로소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 전인 2005년 펴낸 '러브마크(lovemarks)'란 책에서 케빈 로버츠는 브랜드를 넘어서서 시간이 흘러도 소비자들의 변하지 않는 열렬한 사랑을 받는 제품이 바로 러브마크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언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는 문제는 문화와 경제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올해 초부터 각 지자체들은 이 둘의 만남을 최대의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문화마케팅을 위해서다.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당선인도 문화가 경제를 이끈다며 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서울시의 경우를 보자. 서울시는 2008년 새해에 접어들면서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인 '컬처 노믹스(Culturenomics)'를 민선 4기를 이끌어갈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원동력을 문화에서 찾겠다는 의미다. 오세훈 시장은 신년사에서 문화 경쟁력이 바로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2008년을 서울이 '창의문화도시'로 새로 태어나는 해로 삼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문화인프라 구축에 시정의 역점을 두겠다고 덧붙였다.
일찌감치 '공연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한 대구는 문화와 경제의 만남을 어떤 형태로 이루어낼까. 며칠 전 시에서 건립 계획을 발표한 뮤지컬 전용극장이 좋은 예가 되겠다. 공연문화 중심도시를 꿈꾸는 대구시로선 오페라하우스에 이은 뮤지컬 전용극장이 분명 매력있는 사업일 수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그 전에 완공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장밋빛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따져보자. 대구에서 뮤지컬을 위한 기초예술의 기반이 어느 정도나 갖춰져 있느냐는 문제다. 지금 당장 전용극장에 올릴 만한 이 지역의 뮤지컬이 몇 편이나 있고 이런 뮤지컬을 제작할 여건이 어느 정도까지 되어있나 하는 말이다. 전용극장 건립 이전에 뮤지컬 제작을 위한 기초예술의 기반을 먼저 확실하게 갖추는 게 순서가 아니겠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공연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대구가 기초예술에 먼저 투자를 해야 하는 까닭은 뭘까. 대구가 서울작품의 잔치판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서울의 대형작품 몇몇이 일정 기간 대구 공연을 마치고는 훌쩍 떠나버리고 했다. 물론 이로 인해 대구의 공연 인구가 늘어나고 저변이 넓어진 건 사실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 문화예술의 기반은 도외시하고 문화 마케팅에만 너무 주력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대구 문화의 러브마크는 뭔가? 문화산업을 키우고 문화산업 전문인력만 키운다고 해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다. 대구보다 사정이 나은 서울도 문화인프라 구축이 먼저이고,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마당이다. 대구 역시 지금 문화판이 먼저 살아야 한다.
경남지역에선 지금 기업의 문화예술지원인 메세나가 활발하다. 이 지역의 106개 기업이 지난해 9월 출범한 (사)경남메세나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중소기업인 이들이 지역의 문화단체에 일정금액을 지원하면 그 금액만큼 해당 지자체에서 더 지원해주는 '매칭펀드(matching fund)' 사업도 올해는 확대해나간다는 소식이다.
공연문화 중심도시 대구의 러브마크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이같은 매칭펀드 사업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대구문화의 러브마크는 문화판의 잠재력을 키우는 기초예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운석(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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