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속고 속이는 세상] 거짓말 나무 '피노키오의 코'

속는 게 '바보'라지만 바보가 아니기도 힘든 세상이다. 헛된 욕심과 욕망, 본능에 속삭이는 속임수는 무척이나 질기고 치명적이다. 사기꾼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풍선에 바람을 넣듯 희망을 '펌프질'한다. 우리는 왜 뻔한 거짓말, 비상식적인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일까.

◆남들이 한다면야=귀가 얇은데다 다른 사람 뒤통수를 정신없이 쳐다보는 당신은 '투자 사기'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투자 사기는 '남의 돈을 거저먹겠다.'는 당신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남들도 하니까 믿을 수 있다.'는 심리를 교활하게 이용한다. 그 첫 단계는 친구나 친지의 소개. '이게 요즘 돈이 된다더라.' '대기업에서도 투자를 한다더라.' 지인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세상에 당신만 알고 있는 투자 방법은 없다.

부동산 경매로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수십여 명으로부터 150억 원을 뜯어낸 대구 시내 모 법률사무소 사무장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자신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점을 이용, 매달 투자금의 50% 이상 벌 수 있다며 일반인들의 투자를 유도했다. 피해자들은 'A씨가 전문가니까 알아서 하겠지.', '절친한 친구의 소개인데 사기야 치겠어?'라며 섣불리 믿었다가 큰 손해를 봤다. 주로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경매 지식이 어두운 중년 여성들이 범행 대상이 됐다. 남편의 퇴직금이나 곗돈, 적금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털어넣은 경우도 있었고 가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고소를 포기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왜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수익률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을까.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소액으로 투자를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투자금을 늘려가고 결국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어느 날 갑자기 고위층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문제를 인맥을 이용해 해결해 주겠단다. 활동비나 출장비만 쥐여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한다. '까짓거 해결만 된다면야.' 마음을 먹는 순간, 당신은 이미 사기 피해자다.

지난 1월 대구 서부경찰서에 붙잡힌 박모(68) 씨는 사칭 사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박 씨는 현직 대통령의 육촌을 사칭해 개척교회 등 형편이 어려운 교회의 목사나 신도들에게 접근했다. "다른 교회에 다니다 이사를 오게 돼 이 교회를 다니고 싶다.", "모친이 재산이 많은데 교회 형편이 어려워보이니 기부를 하겠다."는 게 주된 수법이었다. 박 씨는 교회에 따라 현금이나 음향기기, 금 등을 기부하겠다며 꼬드겼다. 실제 음향기기 업체에 함께 방문해 계약서까지 쓴 뒤, "음향기기가 비싸 부담이 크니 300만~500만 원만 보태라."는 식으로 돈을 받아 달아났다. 일부 교회는 사기 피해 뿐만 아니라 음향기기 비용까지 부담해야 했다. 금 수십 돈을 신도로부터 구입해 기부할 테니 금을 가져오라고 한 뒤 들고 달아나기도 했고 모 대기업 고위 간부와 친하니 취업을 알선해 주겠다며 활동비를 받아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그는 범행 대상을 물색한 뒤 교회에 짧으면 일주일, 길게는 한달 이상 다니며 안면을 틔웠다. 깔끔한 외모와 점잖은 말투로 노신사로 포장했음은 물론이다. 피해자들은 경찰에서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워낙 말이 번드르르했고 설마 속이겠나 싶었다."며 땅을 쳤다.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사기의 또다른 표적이 된다. 대구지검 검사 B씨는 '본인이 맞느냐.'는 전화를 심심찮게 받는다. B검사를 사칭한 C씨(34)가 여성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맺고 돈을 뜯어냈던 것. C씨는 2년 전 부산에서도 B검사를 사칭하고 다니다 진짜 B검사에게 붙잡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출소하자마자 또다른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셈. C씨는 검사를 사칭하며 20대 여성들을 유혹, 결혼을 빙자해 성관계를 맺고 수백만 원을 뜯어냈다. 서울과 부산, 대구 등에서 구속된 것만 네 차례나 된다.

C씨에게 당한 여성들은 회사원, 교사, 간호사 등 직업도 다양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C씨는 검찰의 시스템이나 검사들의 특징 등을 눈여겨봤고 검찰의 인사 시스템이나 전문·법률 용어를 그럴 듯하게 떠들며 여성들의 혼을 뺐다. B검사는 "실제 피의자 조사를 위해 만나보니 외모나 말솜씨가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성관계를 미끼로 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외부로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고 말했다.

◆왜 속을까=어이없는 거짓말,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들. 사기는 타인에게 의존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다. 자신의 문제를 마술처럼 해결해 줄 사람을 기대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최면에도 잘 빠져들고 허무맹랑한 종교에도 쉽게 휩쓸린다. 이 같은 심리의 뿌리에는 권위적 대상이나 인물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이들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사기를 당하는 이들은 모두 자존감이 낮은 걸까. 그렇진 않다. '남들이 다 그러더라. 그렇다면 나도.'라는 심리 탓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사회적 동조'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7명의 피실험자에게 기준 선과 길이가 다른 선을 보여주고 어떤 선이 기준선과 길이가 같은 지 대답하게 했다. 사실 7명 가운데 6명은 가짜 반응을 하는 실험 보조인이고 1명 만이 피실험자. 결과는 흥미로웠다. 진짜 피실험자를 제외한 나머지 보조인들이 엉뚱한 답을 제시하자 진짜 피실험자마저 오답에 동조를 했던 것. 이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거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의심했다. 특히 실험 참가자 중 불과 1/4만이 자신의 소신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남들의 행동이 자신의 판단에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집단에 속하길 원하고 남들에게 따돌림 당하길 꺼려하는 심리 탓도 있다.

이 같은 사기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대구지검 관계자는 "사기 행각은 사회의 여러 영역 중 투명성이 부족하고 거래에 있어 공정한 '룰'이 없는 곳에서 벌어진다."며 "학연·지연·혈연이 앞서지 않도록 제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장문선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인의 자존감을 높이도록 노력하고 사회현상에 대해 개인적 확신이나 신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안 당하려면…"공짜는 없다"

수사기관 종사자들은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기본적인 사항만 확인을 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말하는 사기 피해 예방 수칙을 모아봤다.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자=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등기부등본'조차 확인하지 않는 이도 있다. 기업이나 개발 사업에 투자할 경우에는 법인 등기나 사업자등록 유무를 확인하는 것도 기본이다.

▶사업 추진 상황을 실제보다 부풀릴 경우=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실제 진행 정도보다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부풀리는 경우가 반복될 경우 의심해봐야 한다. 이들은 사업 성공 여부에 대해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쉽게 사과하고 수습하려는 특징이 있다.

▶외모나 외형에 속지 말자=사기꾼의 행색이 초라한 경우는 없다. 이들은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고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 특히 각종 상담이나 설득을 하는 도중 고위층 등 영향력 있는 인사와 통화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마치 굉장한 친분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그들이 왜 하필 당신과 있을 때만 고위층과 통화하는지 의심해 보자.

▶나만 아는 비밀인데…=세상에 요행은 없고 당신만 아는 은밀한 개발 계획도 없다. 평범한 당신까지 접할 고급 정보라면 그게 과연 고급 정보일까. '나만 아는 건데, 이번에 같이 해볼래?' 이런 얘기는 의심해 보는 게 좋다.

▶자존심을 버려라=사기라는 판단이 들 때는 과감하게 발을 빼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사기 피해자, 특히 남성들의 경우 가진 모든 것을 '올인'한 경우가 적지 않고, 사기라고 스스로 인정했을 때 무너질 자존감을 두려워해 '막장'까지 몰리는 경향이 있다.

장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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