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사랑한 그들/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강주헌 옮김/효형출판 펴냄
그는 늘 카페에 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행복이 무엇이고 불행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만을 터뜨리기 위해, 커피나 술을 마시기 위해, 신문을 보기 위해, 아이의 진저리나는 울음소리를 피해, 종일 불평을 쏟아내는 아내의 목소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카페cafe'는 프랑스어로 '커피'라는 말이다. 커피는 17세기에 프랑스에 수입됐다. 커피가 들어오고 카페가 생기면서 프랑스인의 삶은 변했다.
카페에서 부르주아들은 문학과 연극을 이야기했다. 발표된 작품과 연극에 대해 자기 생각을 기탄없이 쏟아냈다.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명성을 얻고 또한 잃었다. 작품의 성공 여부도 카페에서 결정되곤 했다.
등단을 노리는 예비 시인들은 카페에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설파했다. 다른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자신을 내쫓은 일당을 짓씹었다. 멸시당한 자들은 카페에서 가장 준열한 비판자가 됐다. 그래서 카페는 파당의 원천이었다.
술꾼들은 형형색색의 술잔을 부딪치며 세상사를 잊었다. 한량들은 겨울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독신자는 신문값을 아끼려고 카페를 찾았다. 게으름뱅이는 종일 카페에 눌러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들에게 카페는 도피처였다.
학문적 토론이 벌어지는 카페도 있었고 술만 마셔대는 축들이 모이는 카페도 있었다. 카페는 은밀한 만남의 장소였고 또한 소문이 퍼지는 장소였다. 반체제적인 소문도 카페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카페는 음모를 꾸미는 장소였고, 숨어든 첩자들이 음모를 밝혀내는 장소였다.
카페는 타락한 삶이 고이는 장소였다. '카페에만 가지 않는다면 어떤 짓이라도 괜찮다.' 당시 부르주아들이 그런 좌우명을 가질 만큼 타락한 공간이었다. 카페는 언제라도 외상술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월급쟁이들이 빈털터리가 되는 장소였다. 술은 아무리 정제해도 술이었고, 카페는 악의 뿌리였다.
초창기 여성에게 카페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카페나 여급을 두었고, 창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카페를 힐끔거렸다. 여자들은 남자를 끌기 위해 웃었고, 결국엔 여자의 웃는 얼굴이 카페의 표정이 됐다.
무엇보다 카페는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카페는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원하는 시간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어떤 구속도 없었다. 그곳은 법이 없는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낮이고 밤이고 술을 마셨고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이 테이블에 앉으면 웨이터가 서둘러 달려와 주문을 받았다. 술잔은 끝없이 채워졌다. 예술가들은 카페에 앉아 영감을 얻었다.
고흐, 고갱, 피카소,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마네, 보들레르, 랭보, 지오노, 사르트르, 귀스타브, 에밀졸라, 빅토르 위고, 스탕달, 기욤…. 그들은 카페를 사랑했고, 카페에 머물렀다. 고흐는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었던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묵고 있는 카페의 내부를 그려볼 생각이야. 밤새 문을 열어두는 이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밤을 배회하는 사람들은 밤이슬을 피할 돈이 없을 때, 너무 취해 다른 곳에서 문전박대를 받을 때 이곳에서 안식을 찾는다.'
그랬다. 예술가들에게 카페는 영감과 만나는 장소이자, 도피처였고 집이었다.
이 책 '카페를 사랑한 그들'은 갖가지 종류의 카페놀이 원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카페를 사랑했던 예술가와 부르주아, 서민, 농부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 오아시스, 휴식, 모항, 행복, 여자, 축제, 도박, 민중 등의 키워드로 카페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한다. 작가 크리스토프 르페뷔르는 카메라를 들고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19세기 카페에서 삶과 오늘의 모습을 담아냈다. 거기에 프랑스 대문호의 유명작품을 끌어들여 생생함을 더했다. 216쪽, 1만 3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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