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파커 만년필 한 자루를 발견했다. 1945년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 장군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사용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그 파커 만년필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백열등을 켜놓고 흐린 불빛 아래서 무슨 기록을 남기는지,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는 것인지, 만년필로 열심히 글을 쓰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예민한 만년필촉이 거친 군용 편지지를 긁어대는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어린 감수성을 자극했고, 만년필로 쓴 서체는 군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만큼 각별히 멋져 보였다. 알 듯 모를 듯한 문장에서는 심오한 향기와 품위마저 느껴졌다. 만년필로 글을 쓰면 저절로 저렇게 멋진 글이 나오나 보다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빠이롯트' 만년필 한 자루를 사주셨는데 그 만년필로 시를 쓰고 일기도 쓰고 무수히 많은 편지들을 썼다. 내 소유의 만년필이 생긴 뒤에도 아버지의 파커 만년필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그것을 유품으로 갖게 된 것이다.
1809년 영국의 F.R. 폴슈가 밸브식 펜을 발명한 것이 최초의 만년필이라고 한다. 지난 200년간 세계사를 기록하는 펜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지켰던 만년필이 컴퓨터가 일상화되면서 필기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구세대의 유물이 되어 빛바랜 추억의 뒷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명품 만년필을 소장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새하얀 와이셔츠 주머니에 만년필을 꽂고 다니는 것이 지식인의 전형처럼 여겨지던 한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일부 마니아 또는 수집가들에게나 각광받는 골동품으로 여겨질 뿐이다.
요즘은 전화번호나 간단한 메모는 핸드폰에 자판을 두들겨서 저장해두고, 대개의 글들은 회사 컴퓨터나 개인용 노트북 PC로 쓰게 되므로 필기도구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문명의 기기가 우리 생활에 찾아온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사이 컴퓨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엄청난 혁명이며 지금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펜과 노트 대신에 자판과 화면을 앞에 놓고 몽상에 잠긴다. 펜을 쥐고 종이를 내려다보면서 글을 쓰는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자판 앞에 양손을 벌려놓고 화면을 응시하는 것이 요즘 글을 쓰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한 자루의 만년필에 익숙했던 나의 손도 클로바타자기로, 다시 전동타자기로 옮겨 다니다가 486에서 586으로, 다시 팬티엄급 이상으로 업그레드되어 왔지만 옛날에 만년필로 쓸 때보다 밀도 있는 글이 써지지 않는 것 같다.
장정일은 네 번째 소설 '보트하우스'에서 오늘날의 작가들을 '너나없이 핸드폰이나 삐삐를 들고 다니며, 아파트나 자동차든 대중들이 욕망하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는, 삼성맨인지, 현대맨인지, 대우가족인지, 연예인인지, 삐끼인지가 헷갈리는 양계장의 닭들'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나는 '양계장의 닭들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파커 만년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하고 그것으로 시도 쓰고 잡글도 쓴다.
만년필로 글을 쓰면 문학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던 문청시절의 초심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래서 글이 더 잘 써지고 시상을 떠올려 종이에 옮겨 적는 행위를 통해 각별한 행복감을 느낀다. 천국에 드신 아버지 영전에 파커 만년필로 쓴 멋진 글을 바치면 평소의 호방하신 모습 그대로 크게 한번 웃어 주실 것도 같다.
박상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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