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군사력을 갖춘 사설 군사조직이 난립했다. 미군정은 국군준비대, 건국치안대 등 사설 군사단체를 해체하라고 명령하고 1946년 1월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했다.
국방경비대는 치안 유지를 위해 전국 8도에 각각 1개 연대를 편성했다. 대구에서는 1946년 2월 18일 제6연대가 대구시 중동에서 창설되었다. 그러나 6연대 창설을 주도한 하재팔은 학병 소위 출신으로 좌익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연대장은 초대에 김영환 참위(소위), 2대에 최남근 부위(중위), 3대에 김종석 정위(대위), 4대에 심언봉 부위, 5대에 다시 최남근 부위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연대장 재임 기간은 김영환과 심언봉이 통틀어 몇 개월에 불과했고 김종석과 최남근이 2년 6개월 동안 번갈아 맡았는데, 이들도 좌익사상이 강했다.
6연대 대원모집도 선발기준이 완화되어 친일파 경찰에 대한 반감과 사회불만세력, 좌익분자, 대구폭동사건으로 쫓기던 청년들까지 피신처로 삼아 대원으로 지원했다. 결국 6연대는 좌익사상을 가진 간부와 대원들이 1948년 말과 1949년 초에 걸쳐 세 차례의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초급장교와 병사 등 다수를 사살하고 체포되거나 도주했다. 반란연대가 된 6연대는 1949년 4월 22연대로 흡수, 해체되었다.
▶1930년 명왕성 발견 ▶1951년 네팔, 영국으로부터 독립
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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