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총선 후보공천 지켜보면서…

필자는 1990년대 중반 총선거를 앞둔 영국의 정계를 취재하러 갔다가 후보공천 과정을 잠시 참관한 적이 있다.

런던 북쪽으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인구 11만여명의 우리나라의 군(郡)과 같은 카운티 (county). 시내 공회당에서 400여명의 보수당원과 군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천신청자 7명이 20분씩 정견발표를 하는 동안 지지자들의 박수로 장내 분위기는 뜨겁기만 했다.

영국의 정당들은 총선거가 예정되면 선거 3개월 전에 당원, 비당원을 반반으로 하는 20~25명 규모의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

공천과정은 후보자신청접수, 납세 및 위법 전과 등을 가리는 서류심사, 정견발표, 심사위원들의 면접을 거쳐 1~2명을 추천하면 당비를 낸 당원들이 대회를 열고 투표로 선출한다.

미국의 공화, 민주당은 1800년대 중반부터 지구당의 간부회의 (Caucus) 에서 추천 또는 경선(競選, Primary)을 통해 후보를 낸다. 경선의 경우 당원들만 참여하는 폐쇄형(型)과 국민도 참여시키는 공개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이 후보공천을 처음으로 실시한 것은 1956년 5월20일 예정된 3대 국회의원 선거때로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이 실시했다. 다만 자유당은 지구당대회에서 선출한 30여명의 후보를 2인자인 이기붕이 자의로 바꿨다.

반면 민주당은 기특하게(?) 민주적인 공천을 했다. 후보결정의 비율은 당원대회 75~80%, 시도지부 20%, 중앙당 5~10%로 설정, 전과자 및 용공(容共)분자가 아니면 추인했다.

5·16 이후 6대 총선때부터 여야정당들은 후보공천을 상향식에서 중앙당이 전권을 갖고 결정하는 하향식(下向式)으로 바꿨다. 지구당에 맡길 경우 출신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의 독단과 전횡이 심화되고 과열경쟁으로 부패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중앙당의 전권(全權)공천은 권력자의 독단에 의해, 그리고 밀실 뒷거래 야합 나눠먹기 금품수수 등에 의해 당원들과는 무관한 낙하산 공천, 날벼락공천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대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오는 18대 국회의원선거에 내세울 후보공천작업을 앞장서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서 국회의 과반 이상의 안정의석 확보가 장차 이명박 새 정부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은 이해할 수 있다.

공천작업을 진행중인 한나라당이나 곧 착수할 통합민주당 모두 상향식이 아닌 중앙당에 의한 하향식 공천이다. 이는 총선이 불과 50여일 남았고 지역협의회에서 민주경선을 치를 여건이 미비하여 자칫 불법 부정한 경선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듯하다.

양당 모두 심사위원의 반을 외부인사로 위촉하고 위원장을 법조계인사로 추대한 것은 공정심사를 강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국민의 최대관심은 과감한 인적 쇄신-대대적인 물갈이에 쏠려있다. 공천 때마다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은 정치발전과 국가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40~50% 운운의 물갈이 기준을 강조하고 현역의원 중 초선 ○%, 재선 ○%, 3선 이상 ○%, 신인 ○% 식의 쇄신안이 최선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신인이건 기성정치인이건 국가관, 능력, 전문성, 경륜, 도덕성, 성실성을 바탕으로 과학적, 합리적으로 평가 추천해야 한다. 특히나 참신성 전문성 등 한가지만 기준 삼아 내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미국이 지난 1970년대 중반 워터게이트 사건-닉슨의 사임 이후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무조건 물갈이론에 휩쓸려 양당이 40~45%를 교체했으나 신인들만의 의회가 무경험에다 제각기 한건주의, 영웅주의에의 집착으로 의정실적은 매우 저조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물론 특정인사의 정략공천, 계파간 나눠먹기식 공천, 지역의 민의를 외면한 실력자들의 입김과 압력에 의한 공천 등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TK, PK 지역서 아무나 내세워도 될 것이라는 발상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공정하고 깨끗하고 엄정한 인물 고르기-후보 공천은 총선에서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한편 당선율을 높이게 될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한나라당은 대선승리와 함께 국민의 50% 당 지지에 부응하기 위해 파격적인 공개심사로 국민과 함께 후보를 공천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도 깊이 생각해봄직하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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