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프리즘] 과장된 성공담

잘 차려입은 중년의 부인이 아들과 함께 자리에 앉는다. 자신과 아이에 대한 소개는 극히 간단하게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선생님 앞에서 약속해라. 이제부터는 TV와 컴퓨터는 끊고, 잠은 4시간 이하로 자고, 일요일에는 농구하러 가지 않고, 시험 칠 때까지는 친구도 끊겠다고." 상담자인 필자를 바라보며 숨 쉴 틈도 없이 다시 주문한다. "선생님, 이 애가 오늘 정신이 번쩍 들도록 좀 꾸짖어 주시고 마음을 다잡아 주세요. 얘는 정말 게으릅니다. 머리는 좋은데 운동과 친구를 너무 좋아해요. 지금처럼 살면 절대로 대학에 갈 수 없고, 인생이 끝장난다는 것을 좀 확인시켜주세요. 초등학교 때 얘보다 못했던 제 친구 아이는 고등학교 가서 펄펄 날다가 이번에 서울대 의대에 갔어요. 걔는 공부밖에 몰라요. 3년 내내 단 하루도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데요. 과외도 안 받고, 학원도 거의 안 다녔데요.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묘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이의 이름과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등의 기본 사항을 짤막하게 묻는다. 아이를 똑 바로 바라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해 준다. "참 영리하게 보이고 잘 생겼구나. 공부라는 것이 별 것 있나. 그냥 하면 되지. 3학년 올라가면 잠은 반드시 6시간 이상 자야한다. TV와 컴퓨터는 주말에 즐기는 것이 좋겠구나. 일요일에는 몇 시간 운동하며 땀을 쫙 빼고 목욕하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산 좋아하니? 한 달에 한두 번 산에 올라가 보면 아주 머리가 맑아질거야. 지금까지 운동하고 논 것이 너에게는 재산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놀아 본 학생이 공부도 잘 한단다." 어머니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점과 해결 방향에 상담자가 강하게 동조해 주며 아이를 다그쳐주길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는 어머니의 요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놀라며 표정이 밝아진다.

어머니가 말한 그 의대 합격생은 필자도 잘 아는 집 아이이다. 그 학생은 누구보다 잘 놀고, 누구보다도 분답고 활달해 좀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다. 성공한 사람의 성공담은 과장되기가 싶고, 한 다리 건널 때마다 살이 붙어 엉뚱하고 황당한 신화가 되는 경향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왜 항상 근면과 성실, 극기로 일관된 삶을 살며 수도자처럼 살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성공담은 너무나 판에 박힌 전형성을 가진다. 문학으로 치면 상징과 함축이 빈약한, 밋밋하고 재미없는 평면적인 작품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전 과정을 즐길 줄 안다. 입시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열정적으로 집중하고 몰입하되 계획한 공부를 한 단락 매조지 하고 나면 푹 쉬며 여유를 가지는 학생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윤일현 (교육평론가·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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