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골에서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통영에 왔으니 당연히 청마 유치환의 문학을 만나야 할 터였다. 통영시청 홈페이지에서 안내한 여정을 따르지 않았다. 이순신과 관련된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시민문화회관에서 행사가 열리는지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무척 애를 먹었다. 시민문화회관 앞에서 내려다 본 통영항과 통영시내의 풍경이 정겨웠다. 바람 한 점 없는 항구는 잠잠하다 못해 잠을 자는 듯이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시민문화회관 아래편에는 세계 15명의 조각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몇 장의 기념사진과 함께 통영항을 카메라에 담았다. 청마 유치환의 '깃발' 시비는 바로 조각공원 위쪽에 있었다. 시비는 고풍스런 모습으로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1972년도에 세워졌으니 30년 가까이를 이곳 통영의 바다 언덕 위에서 세월과 해풍을 견뎌내었던 셈이다. 시비 뒤쪽 언덕 아래에서 갑자기 달려오는 푸른 바다. 청마에게 바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리움의 표상이었다. 지상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아픈 운명의 푯대 끝에서 백로의 날개처럼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 누구인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의 '깃발' 전문)
감상적이라고 할 만큼 높이 승화된 감정의 말들이 하나의 영원한 대상을 찾아서 부르고 있다. 청마는 바닷가에 높이 서 있는 깃대와 펄럭이는 깃발에서 모티프를 찾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깃발'이라는 구체적 모티프에다가 많은 추상적 의미를 결합시키면서 깃발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애수', '백로',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 등은 모두 깃발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보조관념들이다. 그럼으로 인해 깃발이라는 일상적 사물이 지니고 있는 활기참과 희망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애수가 짙게 배어져 나온다. 그러한 정서가 바로 청마의 기본적 정서이다. 깃발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 모습, 즉 하늘을 향해 펄럭이지만 결국은 땅에 매달린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청마의 슬픔이다. 그것은 꿈과 이상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어려운 현실 앞에 굴복하고 마는 시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푸른 해원'은 결국 꿈일 수밖에 없는 저 먼 곳에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오히려 더 슬프다.
사람들은 청마를 생명파 시인으로 부른다. 강열한 삶의 의지를 남성적이고 강렬한 어조로 표현한 한문투의 그의 시들은 김소월과 서정주로 대변되는 한과 애상, 그리고 여성적 비극의 정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청마는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만약 나를 시인으로 친다면 그것은 분류학자의 독단과 취미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찌 사슴이 초식 동물이 되려고 애써 풀잎을 씹고 있겠습니까?"라고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의 서문에 썼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강하고 무겁다.
벚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높이 80m의 남망산을 올라 남동쪽으로 가면 통영항이 보이는 북서쪽의 전망과는 달리 확 트인 한려수도의 절경을 볼 수 있다. 거북등대와 한산도, 해갑도, 죽도 등의 풍경이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공원 기슭에는 조선시대에 1년에 2번 한산무과의 과거를 보았다는 열무정의 활터와 무형문화재 전수관도 구경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는 1953년에 세워졌다는 이 충무공의 동상이 서 있다. 경건하게 목례를 올렸다. 끊임없는 삶에의 강한 열정을 불태우면서도 내면의 진한 애수를 노래했던 청마, 어쩌면 그 애수의 본질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중앙동 청마거리로 발을 옮겼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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