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목숨까지 끊었을까?"
올 초 경북 경산으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22)가 얼마 전 자신의 아파트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전역이 시끄럽다.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주 베트남에 돌아가겠다고 말해 왔다는 그는 미리 비행기표까지 준비해뒀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고 어린 신부를 애도했다.
5년 전 동남아에서 시집온 A씨.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먹을 것도 없는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주제에…"라며 자신을 미개인 취급할 때가 가장 서럽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너무나 보고 싶어 고향에 국제전화를 몇 번 했는데 시어머니에게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엄청 구박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상당수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힘들어한다. 무시당하고 차별받기 일쑤다. 남편에게 폭행당해 죽고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는 경우도 있다.
◆가족과 사회의 멸시
"시집올 때 돈을 3천만 원이나 줬는데, 애 못 낳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김모 할머니는 필리핀 며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구박 세례를 퍼붓기 일쑤였다. 견디다 못한 며느리는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상까지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만 남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 구미에서 일어난 사례이다.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할 가족들이 도리어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경우가 많다. 2년 전 베트남에서 경북 상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 C(24) 씨는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매일 술을 먹고 들어와서는 무섭게 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5년 전 베트남에서 시집온 D씨. "한국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고 가장 먼저 '와! 똑같네'라고 해요. 동물 구경하듯 신기하다며 쳐다봐요." 그는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결혼이주여성 E씨는 택시타기가 겁난다고 했다. "외국인을 첫 손님으로 받으면 재수없다는 택시기사 분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이날 아이를 등에 업은 그녀는 한참 동안 길거리를 헤매야 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 간 경쟁력 보고서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폐쇄성을 세계 49개국 중 44위권에 올려놓았다. 구미 YMCA 관계자는 "일부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에서 고부갈등은 물론, 남편의 잦은 폭력에 시달리다 가출·가정붕괴 등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시집온 김모 씨는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 남편의 잦은 폭행과 시어머니의 구박에 견디다 못한 그녀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땅을 밟은 지 꼭 4개월 만이다. 그녀를 보살폈던 결혼이주여성지원센터 한 관계자는 "한번은 남편한테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며 찾아왔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며 "한 달 동안 그를 보호해 줬는데도 결국 죽음을 택했다"고 했다.
몇 해 전 대구 달성군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이 출근한 사이 결혼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탈출하려다 떨어져 숨졌다. 아파트 9층 발코니에 커튼을 묶어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숨진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한국은 물론, 베트남 현지까지 떠들썩했다.
◆언제든지 떠나겠다.
대구 달성군의 한 공단에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 F씨는 일부러 국적을 받지 않았다. 10년 전 네팔에서 시집와 한국문화에 익숙하다는 그였지만 언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만날 술만 먹고 들어와 때리는 남편도 밉지만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이 크면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경북 김천으로 시집온 G씨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바라보고 살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만 데리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려고 한국국적을 따지 않았다"고 했다.
네팔에서 시집온 H씨도 얼마 후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딸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때 돌아갈 겁니다" 경주 지역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여성 516명 중 30% 정도가 가출 등으로 현재 거주하지 않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들은 결혼 후 혼자 경주를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선진국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국민 의식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이라고 하면 심한 말일까.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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