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공동체사회를 향한 꿈꾸기

물질만능 '즉흥' 利己 판치는 사회…참된 삶은 공동체 교육에서 가능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일을 벌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절이었던 1994년 8월, 뜻을 같이하는 부모들과 함께 나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말이 '함께 크는 아이' '공동육아' 같은 단어들이었다. 육아공동체를 직접 만들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사실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시련은 적지 않았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5년의 세월은 협동조합 초창기의 온갖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시기였다.

육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면서 느낀 점은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공동체를 만들고 가꾸는 일에는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애써 가꾼 공동체가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와 다툼으로 쉽게 파괴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 몇 곳이나 설립되었고, 모두 안정된 터전을 마련하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건강하게 자라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가 몸담았던 육아공동체를 대안학교로, 나아가서 마을공동체로 발전시켜나가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나에게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공동체의 꿈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알맞은 진짜 삶이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아이를 함께 키워갈 공동체사회를 건강하게 가꾸어나가는 일에는 턱없이 무관심하거나 소홀하다. 오직 내 아이만을 위한 집중투자와 무한 교육열이 우리 사회에 가득할 뿐이다.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자녀교육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엄청난 교육열, 심지어는 소득수준에 걸맞지 않은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이 가정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집안 살림이 거덜 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혁신방안은 가뜩이나 자녀교육 걱정으로 불안하고 갈피를 잡기 힘든 우리 부모들의 마음에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현장의 영어선생님들은 한 학급에 35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더 효율적인 영어수업을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한데도, 영어 사교육 시장은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들썩거린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가 궁금한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스스로 깨달아 나가야 할 존재 이유와 자아정체성 확립이 외국어 학습보다 덜 중요하다는 말일까.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허구한 날 교실에서 겪을 자기소외와 모멸감이 비뚤어진 반항심으로 뻗어나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진짜 공부를 하는 아이들, 그래서 학교에서는 놀거나 자는 아이들 말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겪는 또 다른 소외감은 언제까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 아이들 역시 자라서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들이 될 터인데 그 아이들의 마음속 열등감과 분노는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아이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타적인 삶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들, 나만 잘 먹고 살면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분노로 가득한 아이들이 건강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사람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동체로 가꾸어나가는 일에 대해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혹여 내 사랑하는 자식이 그 어려운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도 88만원 세대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어떤 직장이든 열심히 일하면 집이나 병원비, 교육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보장을 해주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어떨까. 그때도 죽자고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을까. 양극화 해소, 20대 80 사회의 변화, 이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 바꾸어나가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공동체 사회의 실현은 우리 모두의 꿈이겠지만, 그것을 향한 꿈꾸기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남희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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