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님도 오겠지/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김동환의'강이 풀리면'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강가에 나가 봄을 맞는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그래서 더욱 봄이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앞산엔 하얗게 잔설이 있어도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알겠다.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치 떨리는 추위만큼이나 성에 갇혀 있는 민생의 참담함을 통해 전란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372년 전 한겨울 병자호란이 배경이다. 박종화는 일제강점기하인 1938년 같은 史實(사실)을 소재로 소설 '待春賦(대춘부)'를 발표했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역설한 것이다. 신석정은 '차거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하고 봄을 기다렸다.
봄은 희망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과실나무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일년 농사를 준비하는 것도 이때이고 초목이 언 땅 깊숙한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 새싹을 피워내기 시작하는 것도 지금이다. 진달래 개나리가 겨우내 숨죽이던 헐벗은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워내는 것은 겨울을 이겨낸 다음이다. 땅 속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은 천하 만물이 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급 학교들이 입학식을 갖고 새내기를 맞는 것도 이즈음이다. 골목을 메우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어느 계절엔들 결혼이 없고 언젠들 꽃이 피지 않으랴만 봄 신부는 더 눈부시고 봄 꽃은 더 화사한 것도 봄이 긴 겨울을 보낸 다음에야 맞기 때문이다.
기다림에는 언제나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렘과 긴장으로 출발선에 서는 것처럼. 이 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취임한다. 그는 18일 여야 간 협상도 안 된 채 조각 명단을 발표했다. 새 정권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오랑캐의 땅에 시집간 한나라 절세미인 王昭君(왕소군)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 했는데, 우리나라의 올봄은 얼마나 근사한 봄이 될까? 19일은 大同江(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 강이 풀린다.
이경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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