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상현(上弦) /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신(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정월 보름달은 왜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일까.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의 기다림이 부풀린 것이리라. 달마다 부풀었다 꺼졌다 수수천년 잉태와 출산을 반복하는 달의 비밀. 달의 정기를 받고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명을 얻는다. 또 한 번 만삭의 몸으로 무겁게 떠오르고 있는 달의 뒷모습을 시인은 훔쳐보고 말았으니. 우주에서 가장 큰 궁둥이가 엉덩이를 닮은 능선 사이에 걸쳐진 모습은 참으로 장대하였으리라. 눈 있는 것들은 모두 숨죽였으리라.

어릴 적 한밤중에 자다 깨어 봤던 요강 위의 엄마 궁둥이. 엄마도 오줌을 눈다는 사실을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그 둥근 이미지가 오늘은 보름달로 떠올라 환하게 환하게 이 지상에 생명의 젖줄을 물려주고 있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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