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 인사이드] 남북 축구 오늘밤에 결전

한국 '5승3무1패' 압도

역대 남·북 축구 대결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는 1980년 9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안컵대회 준결승전이라 할 수 있다. TV 중계를 통해 당시의 그 경기를 지켜봤던 40대 전후 이상의 축구팬들이라면 극적인 역전승의 짜릿한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당시 경기에서 전반전에 북한에 페널티킥 골을 내줘 0대1로 끌려가던 한국은 경기 종료 10분 전 정해원의 헤딩 동점골이 터지고 심판 휘슬이 울리기 직전 정해원이 왼발 슛으로 역전 골을 뽑아 승리할 수 있었다. 승리의 주역인 정해원은 영웅이 됐고 TV중계 아나운서의 절규하는 듯한 '골~'이라는 말은 축구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남·북이 모든 분야에 걸쳐 대결하는 국면이어서 이 경기의 승리는 한국 사회 전체를 한동안 들뜨게 만들었다.

이 경기는 남·북의 두번째 대결이었다. 이에 앞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에서 만난 남한과 북한은 연장전까지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우승, 어깨동무를 하며 사이좋게 시상대에 올랐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북한 축구는 아시아 축구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한국은 이에 자극받아 당시 중앙정보부 주도로 '양지' 팀(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 모토에서 따온 이름)을 창설, 군 특수훈련까지 받게 하는 등 강팀 육성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은 1970년대 중반에는 북한과의 대결이 예상되는 경기 일정이 나오면 패배 후유증을 우려해 그 앞경기에서 기권,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1980년의 승리를 기점으로 남한과 북한의 전력은 역전돼 남한의 승리가 이어졌다.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남한이 1대0으로 이겼고 다음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 대회에서도 남한이 1대0으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남·북한 간에는 해빙 분위기가 조성돼 1990년 10월에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일제 시대 열렸던 경·평전을 떠올리게 하는 행사였다. 평양에서 열린 1차전에서 북한이 2대1로 이겨 지금껏 남아 있는 유일한 승리를 챙겼고 며칠 후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선 남한이 1대0으로 이겼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예선에선 남한이 북한을 3대0으로 대파했다.

2005년 전주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선 0대0 무승부. 지금까지 남·북 경기는 9전5승3무1패로 남한이 우위를 보였다. 20일 동아시아대회에서 2년6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남·북한 축구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3차 예선에서도 만나게 된다. 축구팬들은 남·북한이 남아공 월드컵에 동반 진출하길 바라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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