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흉추부 후만증이라는 척추 기형을 안고 태어난 터키 소녀 부세. 부세는 열살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터키 의료진의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굽은 목뼈가 시간이 갈수록 신경과 장기를 건드려 호흡이 곤란해지고 신경이 점차 마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세는 곧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터키 주치의의 주선으로 부산의 한 병원이 무료시술에 나서 완쾌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구네 집으로 가는 길은 휑했다. 경운기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겨울논을 나누고 있었다. 우수를 맞아 농군들은 논 주위를 까맣게 태웠다. 성구의 집은 소들이 사는 우사 옆 임시건물이었다. 그곳으로 가려면 폭 4m의 개울을 건너야했다. 1.5m짜리 스티로폼 패널을 다리로 깔아둬 발을 내디딜 때마다 녹슨 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일곱살 성구는 보기에도 위태로운 다리를 혼자서도 잘 건넜다. 삐걱거리던 다리가 쿠션 역할을 해서였을까. 맨땅에서 걷는 성구는 뒤뚱거렸다. 그러면서 뛰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길었다. 인사 뒤 말이 없던 성구 아버지 권용배(47)씨가 그제서야 말문을 열었다. "허리뼈가 왼쪽으로 휘어가 오른쪽 다리를 받채줄 힘이 모지래요" 염소를 쫓아 뛰어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권씨는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저래. 지 혼자 놀거나 할매하고 맨날 논다"고 말했다.
성구는 두돌을 넘기고서도 잘 일어서지 못했다. 그즈음 병원을 찾았다는 권씨. 성구의 식구들은 막둥이의 하체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고 했다. "보도 모했어요. 잘 믹이도 아가 살이 안 붙드라카이" 권씨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체에 살이 붙지 않아 찾아갔는데 막상 병원에서도 어디가 문제인지 꼭집어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나팔꽃에 작대기를 세우면 꽃이 작대기 타고 올라가는 거랑 마찬가지"라며 "성구가 좀더 자라면 다시 오라"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균형을 잡아주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던 권씨네는 '좀더 자라면'이란 말을 '학교 들어갈 때쯤 되면'으로 알아들었다.
"수술을 하긴 해야 될 끼라고 생각했지요. 근데 수술을 세번씩 해야 된다카이 이기 뭔 말인가 싶드라니까요" 최근 병원을 찾은 권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척추가 이렇게 심하게 굽은 경우는 처음 본다"는 의사의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성구가 밥을 먹다가도 자주 비스듬히 눕고 소변이 마렵다고 한 게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우환은 아무리 쓸어내도 쌓이는 함박눈처럼 켜켜이 쌓였다.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중학교 졸업반 성구의 형도 그랬지만, 일곱 식구가 함께 살던 집도 얼마 전 화물차 기사로 나섰던 동생 앞으로 쓸려들어갔다. 성구의 수술을 생각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일곱 식구를 돌보던 성구 엄마(36)가 인근 휴대폰 부품 공장에 다니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올 10월쯤에 수술할 끼라고 생각하고 돈을 모으자고 했어요. 1천만원 정도 모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걸로는 택도 없다 카대요" 권씨 식구들의 방에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동안 권씨의 입에서는 희뿌연 입김이 계속 새나오고 있었다.
'선천성 척추기형 측만 및 경박' 척추에 문제가 있다는 것외엔 무슨 병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권씨는 한 터키 소녀가 부산에서 무료시술을 받고 나았다는 사실은 방송보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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