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K(26·여)씨는 자신감도, 의욕도 없다.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들고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늘 위축되고, 사귀고 있는 남자에 대한 확신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도 흥이 나지 않고 오히려 하루를 살아갈 생각에 답답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떨던 수다도 흥미를 잃은 지 오래. 주변에서도 가치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고, 미래도 어둡다는 생각이 든다. K씨는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고, '기분 부전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만성 신경성 우울증'이다.
미혼 여성인 L(25)씨는 알코올 중독으로 벌써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 두 번 술을 마시다 보니 횟수가 잦아졌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술로 풀게 된 것. 그러다 어느 순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됐고, 폭주의 악순환을 반복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됐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술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그래서 술 마시고 싶으면 퇴원하고, 힘들면 다시 입원하는 생활을 반복,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고 있다.
우울·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등 정신 및 행동 장애로 병·의원을 찾은 20대 여성이 크게 늘고 있다.
이는 젊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술을 마실 기회도 그만큼 늘었기 때문. 정신 및 행동 장애 진단 기술을 발전으로, 기분 장애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으로 인식되면서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진 것도 한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기분 장애
우울·조울증, 스트레스, 신경증과 관련된 정신 및 행동 장애가 느는 추세다.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로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 많아졌다. 또 여성의 경우 유전적으로 기분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남성들보다 크고, 사회의 구조·경제적 문제에 남성보다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분 부전증, 신경성 두통 및 신경성 소화기능 장애 등 스트레스성 신체 질환, 사회 불안증, 대인관계 장애, 주체성 장애, 불면증, 학습장애, 순환성 기분장애 등 예전엔 병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증상들이다. 실제 정신분열이나 망상증 등 이른바 '정신병적 질환'은 큰 변동이 없다. 조울증의 경우 진단 기술의 발전, 우울증은 사회적 관심 증대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치료율도 높아졌다. 그저 참고 견뎌내야 했던 증상들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알코올 중독
알코올 중독의 경우도 여성이 남성보다 중독 가능성이 더 높다. 남성들의 경우 개방적으로 술 마시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조기 발견 및 치료가 가능하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몰래 마시는 경우가 많아 중독이나 병의 진행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 또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보고, 치료할 수 있다는 시각이 늘어난 것도 정신과를 많이 찾게 된 이유. 실제로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한 환자의 경우 치매 등 노인성 질환과 함께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긍정적 측면
이처럼 정신과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난 것을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적잖다. 정신분열증만 치료하던 정신질환 영역이 조울·우울 등 기분장애까지 진단하면서 조기에 발견, 만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것. 전문가들은 생활 속에서의 중독이나 심리적 변화들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곽호순 곽호순정신과 원장·채성수 열린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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