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어느 날 런던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보낸 짧은 보고가 존 포시스 국무장관에게 전달됐다. '제임스라는 한 영국인이 10만파운드의 돈을 미국에 기부하겠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미국에 온 적도 없다는 외국인이 왜 거금을 미국에 주려는지 모두들 의아해했다.
1826년에 쓴 그의 유언장에 이유가 있었다. "전 재산을 조카에게 준다. 단 조카가 자식 없이 죽거나, 있더라도 21세가 되지 않거나, 조카가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 경우 지식의 증대와 보급을 위한 협회를 워싱턴에 설립하도록 전 재산을 보낸다…." 유언을 남긴 제임스 스미스슨(1765~1829)은 영국 귀족의 사생아였다. 파리에서 태어나 제노바에서 사망한 영국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였다. 스미스슨(Smithson)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 6천명의 연구원을 거느린 세계 굴지의 연구기관이자 워싱턴에 13개의 박물관과 갤러리'동물원을 관리하는 스미스소니언협회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1835년 조카가 자식도 유언도 없이 죽자 미국 정부가 유산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 돈으로 50만달러가 넘는 거액의 유산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 의회에서는 돈의 용처를 놓고 격론이 벌어진 것이다. 어느 의원은 "의회가 외국인의 선물에 대해 토론하는 것조차 미국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단호히 거절하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지식의 '증대'와 '보급'은 동의어라고 지적하는 황당한 의원까지 나왔다. 논쟁하느라 3년이 흘러버렸다. 일단 돈은 받아두자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스미스슨의 금화를 실은 우편선이 뉴욕항에 도착한 것은 1838년 8월. '어디에 쓸까'라는 논쟁은 이후 8년을 더 끌었다. 아무도 스미스슨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서로 제 얼굴 세우는 데 돈을 끌어다 쓰려고 안달이었다. 1846년 마침내 스미스소니언협회 설립이 가결되기까지 11년의 세월이 걸렸다.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되는 해다. 때맞춰 나흘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민은 '경제를 살려라'는 짧은 당부와 함께 이명박 정부에 5년이라는 시간의 금화를 주었다. 당시 미국도 독립선언 60년밖에 안 된 인구 1천500만의 신생 공화국이었다. 왕이 없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전통도 없고 과학연구나 경제적 기반 또한 취약한 나라였다. 그런 미국과 달리 이명박 정부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반도체와 IT'자동차'조선 등 한국을 떠받치는 물적 토대와 열정적인 수많은 젊은 인적 자산이 있다. 미국이 정치로 '포토맥 강가의 아테네'를 재현했고, 스미스소니언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를 부흥시켰듯 이명박 정부에는 부강한 선진한국 건설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170여년 전의 11년은 21세기로 치면 100년과 맞먹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세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자칫 한눈팔다간 국제 경쟁에서 한참 뒤처질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새 정부가 5년을 어디에 쓸까 갑론을박하다 끝난다면 큰일이다. 기우겠지만 한정된 금화를 엉뚱하게 썼을 때의 결과가 더 걱정이다. 당시 존 퀸지 애덤스(제6대 미국 대통령)의 염려처럼 미국 정치인들이 스미스슨의 금화를 선거운동에 써버렸거나 사범학교를 세우고 오하이오 시골에 농사시험장을 짓는데 몽땅 넣었다면 지금의 스미스소니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식의 보급과 증대라는 이름으로, 과학연구의 산실로 강한 미국을 만든 스미스슨의 꿈, 스미스소니언의 정신처럼 지금 우리 손에는'대한민국협회'가 걸려 있다. 김이박의 이름으로 4천500만이 준 유산이자 밑천이요 꿈이다. 100년 후 선진한국이 앞으로 5년에 좌우될 수도 있다. 임기 내내 여야가 서로 발목이나 잡고 표만 계산한다면 5년은 순식간이다. 5년은 4천만의 지혜를 모으고 선진한국의 싹을 배양하는 데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모든 것은 앞서가는 정치인과 뒤를 미는 국민의 결정과 노력에 달렸다. 스미스소니언의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다.
徐 琮 澈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