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눈 없는 겨울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등장하는 '눈 덮인 산 정상에서 얼어 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용필의 노래 가사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정상 부근만 조금 남아 있을 뿐, 이마저 곧 사라진다는 소식이다. 지금은 꼭 모자를 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린 때문이다.

얼마 전 매일신문에 대구에서 망원렌즈로 잡은 눈 덮인 가야산과 금오산의 사진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비록 모자를 쓴 듯 꼭대기 부분만 달랑 나온 사진이었지만 대구시민들에겐 무척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구미 시민들에게나 고속도로로 구미를 지나치던 이들에게도 흰 눈을 덮어쓴 금오산 정경은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못지않게 상큼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금오산이 구미시민들에게 주는 각별한 의미만큼이나 눈 덮인 금오산의 기상이 더욱 의젓해 보였던 것이다. 최근 들어 눈 구경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요즘 눈 구경하기가 어렵다. 고산지대에서나 깊은 산골이 아니면 한겨울에도 눈 구경이 쉽지 않다. 쌓인 눈을 보는 것은 더욱 힘들다. 눈 녹는 질퍽질퍽함에 넌더리를 내거나 얼어붙은 빙판길 접촉사고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좋지만 눈싸움과 눈썰매를 타는 운치와 낭만은 없어져 버렸다.

겨울도 꼬리를 내리고 있지만 지난겨울 대구'경북 지역엔 눈다운 눈이 내린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 지난 1월 중순 내린 눈들이 평년 같지 않은 다소 추운 날씨 때문에 녹지 않고 남아 있어 그런대로 먼 산 바래기 정도로 눈 맛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같은 온난화 추세라면 자칫 '눈'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열사의 사막 두바이에도 대형 실내 눈썰매장이 들어서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러다간 후손들이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외국으로 눈 관광을 떠나야 하는 시절이 오지는 않을 지 모르겠다.

홍석봉 중부지역본부장 hsb@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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