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 진옥섭
세상에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숭례문의 소실은 그래서 안타깝다. 유형의 문화재도 이러할진대 무형의 문화는 더 빠르게, 소리 없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형상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의 소실이 더 안타깝다.
특히 전통 문화란 실험실의 과학처럼 데이터로 축적할 수도 없고 디지털 기술로 복제와 재생산도 할 수 없다. 사람과 세월이 만나 함께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유한한 사람과 세월 그 자체가 한계이기도 하다. 더욱이 '규격'과 '빠름'을 선호하는 문명은 세월과 함께 어우러져 숙성되어지는 문화를 기다리지도, 키워내지도, 보존하지도 못한다.
이 책은 그렇게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 예술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쓰여진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원래 공연을 위해 쓰여진 보도자료였는데, 초야에 묻힌 전통 예술 명인들을 직접 만나 뜨거운 육성과 체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에 나오는 명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미 세상을 달리했다 한다.
'노름마치'란 제목의 의미는 '놀다'의 놀음과 '마치다'의 마침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고 한다. 그가 나오면 뒤에 다른 이가 필요 없을 만큼, 그래서 놀이를 마쳐야 할 만큼, 고수 중의 고수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책에는 그야말로 수 많은 고수들이 나온다. 풍물의 고수. 춤의 고수. 소리의 고수. 창극의 고수. 무가(巫歌)의 고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들의 뼛속 핏속에는 이미 소리든 춤이든 익을 대로 익어 있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기운을 빌려 '유일무이한 분량으로' 한 송이 꽃들을 피우고 스러져 간다.
곡진한 언어가 책의 무게와 향기를 더한다. 그래서 더 값지다. 손과 머리보다 발과 가슴으로 쓴 듯한 문장은 마치 몸 속을 굽이치며 빠져나와 휘몰아치는 춤사위로 독자를 끌고 간다. 익어있는 것은 소리와 춤만이 아니다. 언어 다루는 솜씨도 이쯤 되면 고수의 경지이다.
"2004년 2월, 군산의 예기 장금도가 춤을 추었다. 인력거 두 대를 보내야 춤추러 나오던 명성도 잊었고, 춤추던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듯했다. 침묵한 세월 속에 풍화가 가속되어, 동작마저 흩어지고 단 한 줌 남았다. 그 분말이 박수의 진동으로 공기의 결 속에 스미고 있었다. 축축한 시나위가락이 다가오자 결로(結露)되어 손끝으로 춤이 뚝뚝 떨어졌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꽃이 피는 건 한참이어도 지는 건 잠깐'이다. 꽃이야 내년에도 피어나겠지만, 잿더미가 된 문화 유산은 영원히 되살릴 수 없다. 아무리 정밀하게 복원한다 해도 그것이 품고 있던 세월의 무게와 전통이라는 '무형의 형상'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숭례문. 600년의 세월의 나이테가 지상에서 사라지는 데는 불과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자리엔 타다 남은 나무기둥 몇 개와 부서진 기와조각들 그리고 '예를 숭상한다'는 현판만이 나뒹굴었다. 땅에 떨어진 예(禮)가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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