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나 모든 환경이 현대화돼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명절을 이어가는 풍습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설이 그렇고 설이 지난 다음 바로 찾아오는 정월대보름 풍습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어쩌면 설보다 더 다양한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정월대보름. 비록 이 삼 십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득히 먼 옛날처럼 사라져만 가는 그 때 그 시절, 대보름을 전후로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달님에게 두 손을 모으며 빌만큼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깡통에 불 넣어 도깨비 불 돌리며 놀았던 쥐불놀이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면 동네는 이상하리만치 어수선하다. 마을 어귀나 논두렁 밭두렁에서도 평소에 보이지 않던 낟가리가 모아지고 집집마다에선 맛있는 음식들이 생겨난다.
집에서는 겨우내 말려두었던 묵은 나물을 삶고 시루떡을 찌려고 떡쌀을 빻느라 부산하다. 아이들은 당장 얻어걸리는 거 하나 없지만 괜스레 즐겁다. 동네 마당에서 멀쩡히 놀다가도 집안이며 부엌이며 들락날락거린다. 시루떡에 쓸 팥고물 한 입 우물거리며 구슬치기를 한다.
집안 곳곳을 뒤지며 깡통을 찾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입구가 넓은 분유깡통이 최고인데, 그나마 없으면 간수메(간즈메라고도 하며 일본말로 통조림을 뜻한다) 깡통이라도 찾아야 했다. 집안 이리저리 뒤져도 깡통이 보일 리가 없다. 그럴 땐 얼마 전에 셋째 동생을 본 귀염이를 찾아가야 한다. 귀염이 엄마가 젖이 없어서 구하기 힘든 분유도 먹였다가 염소젖도 먹이기도 한다는 소릴 얼핏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귀염아, 분유 깡통 하나 도?""인자 하나 뿐인데 공짜로 안 줄라는데"
'뭘 줘야 분유 깡통을 하나 얻을 수 있을까'짧은 시간에 빠른 머리를 굴려야 했다.
"내 썰매하고 바꾸까?""에이, 인자 거랑(개울)에 얼음 다 녹았는데.""내 꺼는 스케이트 날 썰매다, 철사 썰매하고 다르다"
평소에 부러움을 싸던 스케이트 날로 만든 썰매로 귀염이를 구워 삶아야 했다. 지금 당장 쓰임이 없는 보물 썰매보다 필요한 분유 깡통 하나가 더 아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귀염이는 마당으로 고무신을 끌며 들어가더니 분유 깡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
"다른 아들한테 내 한테 얻었다 카지마래이, 중석이 한테도 안줬다.""걱정 말그라. 썰매는 좀 있다 갖다 주꾸마."
완력이 센 중석이에게도 주지 않던 깡통을 거저 주기는 아깝고 뭐라도 하나 받고 싶은 귀염이 마음이었다. 뜻하지 않은 기분좋은 물물교환이었는지, 현물 박치기도 하지 않고 덜컥 외상으로 깡통을 건네주는 게 아닌가.
깡통에다 장도리로 대못을 박으면서 숨구멍을 내었다. 구멍을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좋은 숨구멍이었다. 어떤 땐 장도리로 엄지 검지를 내려칠 때도 있지만, 피부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은 잠시였다. 깡통에다 철사를 길게 매달면 도깨비불집 만들기는 끝이다.
낟가리를 모아 놓은 논두렁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너댓명이 벌써 도깨비 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쥐불놀이를 우린 도깨비 불놀이라 불렀다. 알불 몇 개를 넣고 솔가지 몇 개를 얹었다. 오른팔로 원을 그리며 처음엔 빠르게 돌리다가 불이 어느 정도 붙었다 싶으면 천천히 불놀이를 음미하듯 타원을 만들며 돌렸다.
그런데 예전의 쥐불놀이는 논두렁 밭두렁에다 짚을 깔아 놓았다가 해가 지면 불을 놓으며, 쥐불놀이용 쑥방망이를 사용했는데, 1950~60년대부터 깡통으로 쥐불놀이를 대신했다고 한다.
밤이 점점 깊어지면 논두렁을 가득 채우는 불놀이는 제일 신나는 놀이 중 하나였다. 쥐도 없애고 나쁜 균도 없애 풍년이 들게한다는 쥐불놀이의 뜻은 사라진 지 오래고 단순히 놀잇감으로만 남은 쥐불놀이였다.
돌리기만 하던 불놀이에서 여러 가지 위험한 놀이 방법이 추가되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깡통을 던지는 가 하면 편을 나눠서 포물선을 그리며 깡통을 던지면 그걸 피하는 재미도 스릴이 넘쳤다. 놀이는 위험할수록 더 재미나는 법이니까.
어떤 땐 동네끼리 편싸움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쥐불을 빙글빙글 돌리며 서로 집어던지기를 할 때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놀이였지만 그럴수록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왜 그럴까?
대구 인근에서는 올해 일곱 번째 맞이하는'무태 조야동 달집태우기'행사가 금호강변에서 대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또 대구 동구청과 함께 구암팜스테이마을에서 주최하는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도 21일 구암팜스테이마을에서 열린다.
행사 내용으로는 소리마당·풍물판굿·기원무·달집고사·달집태우기·쥐불놀이와 세시음식 나누어먹기 등이 열린다. 그 옛날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되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행사였으면 한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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