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하늘재'-인생을 닮은 '하늘재'가 좋다

시간이 남긴 보물들 즐비, 현존 최고 '망댕이가마' 조선시대 모습 그

인생(人生)을 비유하는 데 안성맞춤인 사물 중 대표적인 것이 고개다. 삶이 고개를 넘는 것과 비슷하다는 연유에서이리라. 그래서일까? 고개에는 사람들의 눈물과 한(恨), 그리고 삶의 흔적들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천천히 고개를 오르다보면 자연스럽게 인생을 반추해볼 수도 있다. 고개와 인생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2천 년 세월 품은 하늘재.

경북 문경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를 잇는 해발 525m의 하늘재. 2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간직한 고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로 알려진 하늘재가 닦인 것은 서기 156년.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계립령 길(하늘재의 옛 이름)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늘재 여행에 나선 날, 영하 10도의 맹추위가 기세를 떨친다. 문경 쪽에서 하늘재까지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승용차로 고갯마루까지 오를 수 있다. 편리해서 좋지만 그냥 흙길로 나둬 걸어 오르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갯마루에서 아이젠을 하고 소나무 등이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미륵리까지의 거리는 약 3.2km.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북서쪽에 있는 산길이어서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 붙었다. 뽀드득 뽀드득. 발 밑에서 눈들이 비명을 지른다. 숲길 양쪽으로 소나무와 전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 등이 울창하다. 코끝을 아리게 하는 추위, 하얗게 쌓인 눈, 그리고 나무들이 내뿜는 청정한 기운 덕택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흐르는 강물을 닮은 길은 부드럽게 산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미륵리까지 가는 데 40분 가량 걸린다. 하늘재는 4계절 모두가 좋은 곳이다. 갈색 단풍 아래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밟는 가을도 좋고, 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봄도 산책하기에 훌륭하다. 여름에는 시원한 숲 그늘이 길손을 맞는다.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맨발로 걸어도 좋다. 그리고 눈 쌓인 하늘재는 삶을 성찰하게 해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미륵세상과 포암산!

하늘재 아래에 있는 충북 충주 미륵리는 신라 말과 고려 초 사이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미륵대원(彌勒大院)이란 석굴사원이 자리했던 곳. 전설에 따르면 절을 세운 사람은 신라의 마의태자이다. 신라의 국운이 기운 후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는 하늘재를 넘어 이곳에 머물며 절을 짓고 미륵불상을 세웠다.

미륵리 절터에서는 보물 96호인 미륵불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주 석굴암을 따라 불상 주변에 돌을 쌓고 지붕을 얹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축만 남아있다. 고개를 들어 미륵불상을 바라보니 얼굴에 자애로움이 가득하다. 몸에는 검고 푸른 이끼가 낀 반면 얼굴은 하얀색이어서 신비감을 더한다. 미륵불은 56억 7000만 년 뒤에 이 세상에 출현, 석가모니불이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 대다수 미륵불이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이곳 미륵불상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불상 앞으로는 석등과 5층 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하늘재엔 평강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은 온달 장군과 얽힌 전설도 있다. 신라가 이 고개를 통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자 온달은 "계립령과 죽령 서쪽을 차지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다."며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는 것. 미륵리에는 온달이 힘 자랑을 했다는 공깃돌 바위가 눈길을 끈다.

역사의 풍상이 서린 하늘재를 2천 년 동안 묵묵히 지켜온 산이 바로 포암산(962m)이다. 문경 쪽에서 하늘재를 오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이다. 충주쪽에서 보는 것보단 문경 관음리 쪽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압권이다. 삼베를 늘어뜨린 것 같은 하얗고 거대한 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포암산(布巖山)이란 이름도 삼베와 같은 바위가 즐비하다는 뜻의 '베바위'에서 유래됐다. 베바위산과 하늘재! 산과 고개의 이름을 새길수록 순박하기만 했던 민초들의 심성이 가슴에 와닿는다.

하늘재 아래 망댕이 가마

여 있다. 가마 옆 작업장과 유약 재료를 갈았던 디딜방아도 볼거리다.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온 망댕이가마를 민속자료로 지정하는 데 심혈을 쏟은 김 씨는 이곳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문경쪽에서 하늘재 오르는 길에는 도자기를 굽는 도요지들이 많다. 그래서 도자기 마을로 일컬어진다. 8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 씨의 조선요(朝鮮窯)는 '가업을 전승하고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전승자기를 만든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2000년에 만든 김 씨의 가마도 옛 망댕이가마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김 씨는 "문양 하나도 아무렇게나 넣는 것이 없다."며 "푸른 기운을 띤 문경 백자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산 좋고 물 좋은 하늘재 허리에 있는 조선요. 차 한 잔을 음미하면서 조선 전통자기의 맥을 잇는 젊은 도예인의 혼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하늘재 가는 길

북대구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김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문경새재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문경읍 초입에 있는 문경온천에서 계곡을 따라가는 오른쪽 길을 달리다보면 표암사 안내판이 나온다. 조금 더 가면 하늘재 안내판이 나오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대구에서 문경새재 나들목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리고 새재 나들목에서 하늘재 주차장까지는 20분이면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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