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찰리 윌슨의 전쟁'은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다.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니, 조금은 낯선 수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9세 이상 성인 영화라는 뜻인가? '찰리 윌슨의 전쟁'이 어른을 위한 영화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세상의 숨은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 말이다."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퇴각합니다."와 같은 단순한 신문 기사의 이면, 그러니까 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서 퇴각하게 되었는지, 그 이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또 하나, 이런 점도 있다. '찰리 윌슨의 전쟁'에 등장하는 주인공, 찰리 윌슨은 윤리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람이 아니다. 섹스 스캔들과 마약 흡입 혐의로 조사 중인 하워의원. 하지만 그의 비윤리성이 곧 무능함이나 도덕적 무감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섹스를 좋아하지만 찰리 윌슨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연대와 책임감을 느낀다. 실상, 대부분 '어른'은 그렇다. 완벽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어딘가 결함이 있지만 가져야 할 양심의 일부는 간직하고 있는 자들, 그들이 바로 사회인이고 어른이니 말이다.
영화는 스트리퍼들과 함께 욕조에 누워 술을 마시는 남자에서 시작한다. 여자들은 묻는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남자는 마약에 취해 몸도 못 가누는 어떤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뉴스를 좀 더 크게 틀어달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하원의원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니콜스는 '클로저'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연극 연출가 출신인 니콜스는 상황을 압축적인 유머로 제시하는 데 탁월하다. 가령, 섹스·마약 스캔들에 휩싸인 찰리 윌슨이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C.I.A 요원과 미팅을 하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결하는 장면이 그렇다. 비서관들이 드나드는 문과 손님이 드나드는 문, 그 두 문을 활용해 찰리 윌슨의 사무실을 박진감 넘치는 정치 로비의 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찰리 윌슨의 전쟁'에는 로비·투표·내각·거래와 같은 보이지 않는 정치의 흐름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흐름들에는 어떻게 미국이 세계의 정세에 개입하고 그것을 조율하는 지에 대한 구조도 반영돼 있다. 한 하원 의원의 결심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는 불식된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버려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소년들이 반미정서를 품고 자라난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의 품에 들이지 못한, 911이후 미국의 좌절감은 '찰리 윌슨의 전쟁' 안에 유머러스하지만 매우 날카로운 시선으로 제시된다.
늘 착한 미국시민을 연기하던 찰리 윌슨 역의 톰 행크스는 스카치와 여자라면 사죽을 못쓰는 능글맞은 5선 위원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아름다운 몸매와 텍사스 6위의 재산을 가진 로비스트 조앤 역을 맡은 쥴리아 로버츠 역시, 작지만 강렬한 아우라를 보여준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상관을 위해 저주 부적을 사겠다고 말하는 필림 세이무어 호프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찰리 윌슨의 전쟁'은 무엇보다도 치밀하고도 유머러스한 시나리오의 힘에 크게 기댄 작품이다. 백악관 비서진들의 이야기인 '웨스트 윙'을 통해 탁월함을 입증했던 애런 소칸은 이번 작품을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로 보여준다. 세상이 원리 원칙보다는 거래와 협상 그리고 조정으로 운용되는 곳임을 아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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