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학술지인'피부연구학회지(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2월호에 지역 의대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내용은 남성호르몬이 탈모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호르몬의 반응 수용체인 중간물질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것.
그리고 이 연구의 중심에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연구센터장이자 면역학교실의 김정철(50) 교수가 있다.
"지금까지는 탈모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실험실에서 머리카락 모근을 추출, 남성호르몬에 배양하면 호르몬 반응 수용체가 나타나지 않아 정확한 탈모의 원인을 알 길이 없었죠."
김 교수는 이에 기존의 실험방법에서 벗어나 모근 배양의 초기단계에서 남성호르몬을 이용해 탈모 메커니즘을 알아본 결과, 호르몬 반응 수용체 중 모근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인'딕코프(Dickkopf)-1 단백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만일 이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이 개발될 경우 발모를 다시 촉진시킬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성과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교실에서 조교로 일하던 1984년부터 모발 연구를 시작하면서 축적된 연구 노하우가 이번 결과를 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의 모발 연구 실험실에는 모근에서 분리한 5천700여 종의 유전자 칩을 보관한 유전자은행이 있다. 20여 년이 넘게 외길 연구로 축적된 자료가 발견의 단초가 된 셈이다.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는 김 교수를 졸라 △남성 탈모와 사회적 이미지 △음식과 대머리의 상관관계 △모발이식 연구의 계기 등을 들어봤다.
#대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대머리와 대머리 아닌 사람이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다면 누굴 찍겠느냐.'는 스페인의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유권자는"대머리 후보는 찍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신뢰감이 가지 않아서이다.
한 때 미국에선 모발을 심는 비용이 너무 비싸 아예'대머리가 좋다.'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실패했다. 많은 여성들이"나이 들어 보인다."며 대머리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이 40대 이후가 되면 사회적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같은 값이면 젊어 보이는 게 경쟁력도 있고 힘이 되는 현실입니다."
역설적으로 중년 이후 하나 둘 씩 빠지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얘기다. 탈모는 외관상 드러나는 노화에 대한 대표적 징후로서 느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노령화 사회로 갈수록 대머리가 될 확률도 늘어난다.
"40대 이후 남성들의 속내를 드려다 보면 성(性), 운동, 식도락 그리고 탈모 걱정으로 꽉 찬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탈모는 외모와 관련해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는 방증이다.
김 교수는 따라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투자의 하나로 모발 이식에 대한 관심을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많은 후보들이 김 교수의 조언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식이 대머리를 예방한다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3~5배가량 대머리가 많다. 이유가 뭘까. 유전적, 인종적 특성 때문일까.
유전적 소인이 있긴 해도 정확한 답은 아니다. 걸인치고 대머리인 사람 없고 북한보다 남한에 대머리가 많은 까닭을 유추하면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식습관의 차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수염이나 다른 체모는 굵고 튼튼하게 하지만 유독 머리카락만 빠지게 만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탈모를 일으키는 과정에서'5알파-리덕타제'라는 특정효소의 작용이 나타나는데 이 효소를 억제하면 탈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문제는 식물성 음식에는 이 효소를 억제하는 성분이 많은 반면 인스턴트나 동물성 음식에는 오히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육식중심의 서구식 식생활 패턴에서는 대머리 발생의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자고일어날 때마다 머리카락이 줄어든다면 당장 채식위주의 식단으로 바꿔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어떻게 모발이식 연구를 하게 됐나
김 교수는 의대를 졸업한 후 환자를 보기보다는 연구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기초의학 부문인 생화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조교시절, 일본에서 개발된 발모제의 의학적 효능을 검증하는 실험 요청을 받고부터 머리카락 탈모와 발모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군복무 시절 우연한 기회에 부대 근처 농가서 키우는 얼룩돼지를 보고'흰 털을 검은 털 부위에 옮겨 심으면 검게 될까'하는 다소 엉뚱한 가설을 세우게 된다. 옮겨 심은 흰 털이 만일 검게 되면 새치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나 제대하고도 모발이식에 관한 흥미는 계속된다.
당시엔 이미 미국의 펀치이식술과 일본의 단일모 이식술이 선을 보이고 있었지만 시술결과와 만족도는 미미했다.
여기서 김 교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빛을 발했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나의 모낭에 머리카락이 하나, 둘, 혹은 세 가닥이 뻗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그는 "아예 모낭을 통째로 이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1992년 자신의 머리카락 모낭을 떼 내 자신의 오른 쪽 다리에 심는 실험을 한다.
성공이었다. 이른바 세계적으로 인증을 받게 되는'모낭군 이식술'의 탄생이다. 대머리 환자들의 만족도 컸다. 다리에 심은 그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무탈하게 자라고 있다.
그가 직접 개발한 식모기는 특허 출원됐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바이오 벤처기업인'트리코진'도 설립했다.
지금까지 그의 모낭군 이식술 개발 후 시술을 받은 사람은 5천여 명이 넘고 대기환자는 넘쳐난다. 현재 김 교수에게 모발이식 상담을 받으려면 3,4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시술은 1년 반 쯤 기다려야 할 수 있는 형편이다.
"제가 모발연구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스승이신 존스 홉킨스 의대 신현승 교수의 조언이 컸습니다."
조교 때 연구테마를 논의하던 그에게 신 교수는 당시 틈새 연구로서 모발연구를 권했고 그것이 김 교수가 세계적인 연구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일주일에 모발이식 4번, 외래 1번, 연구과정 체크와 강의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는 최근 넉 달째 그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김정철 박사=구미 해평 출생. 1982년 경북대 의대 졸업. 87년 의학박사학위 취득. 모발이식관련 논문발표 150여 편.
그의 모낭군 이식술은 2천500모에서 3천모를 심는데 비용은 약 560만 원 정도로 시간은 약 4시간이 걸린다.
현재 그는 제자들과 함께 외국의료자본과 기술의 유입에 따른 독자적 기술유출을 막고자'Dr. Hair TT(Transplant&Treatment)'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이에 대한 홍보에 열중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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