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득의 여왕' 텔레마케터들의 비법

"설명하기보다 마음을 훔쳐라"

'설득'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될 소통 방식이다. 가족, 직장, 모임, 조직 등 어디에서도 상대방을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다. 전화 통화만으로 낯모르는 이들의 구매를 끌어내는 텔레마케팅은 설득 기술의 집합체와 같다.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지갑을 연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설득하는 것일까.

◆텔레마케팅 현장을 찾아서=지난 18일 오후 대구 동구 모 통신회사 컨택센터. 대학교 도서관 열람실처럼 칸칸이 구분된 공간에 헤드셋을 착용한 상담원들이 자리잡고 앉았다. 떠들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내는 꽤 조용했다. 상담원들은 책상 위 모니터를 주시하거나 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원고를 보며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연방 딸깍대는 마우스들이 묘한 리듬을 만들었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72개의 목소리가 소곤거리듯 화음을 빚어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00고객센터입니다. 010-xxxx-xxxx번 사용하시는 고객님이십니까. 고객님께 알려드릴 새로운 정보가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1, 2분간 통화가 가능하신가요." 대화는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이들이 하루에 거는 전화는 100~150통. 상담원이 72명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 1천여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를 시도하는 셈이다. 컨택센터의 경우 본사에서 직영하지 않고 아웃소싱을 통해 외부업체에 위탁 운영된다. 이곳 관계자는 "상담원마다 매일 할당되는 통화량과 가입 건수가 있고, 본사에서 내려오는 캠페인이 달라지기 때문에 교육은 필수"라며 "고객들의 문의에 응대하기 위해 40여가지에 이르는 요금제를 거의 숙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말을 거나=텔레마케터는 아무 얘기나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확인과 통화 가능 여부를 탐색한 뒤 상품 추천, 요약, 종료 등 정해진 순서와 큰 틀에 따라 '설득 작업'을 벌인다. 상대방이 상품 정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가입하지 않도록 반드시 전해야하는 정보들도 포함된다. 대형 업체들의 경우 판매상품이나 서비스에 따라 원고를 사전 제작, 상담원들에게 배포하고 교육한다. 그러나 상담원들이 만들어진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령 통신회사의 경우 '새로운 서비스'나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고객님의 요금과 관련해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다"는 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긍정적인 대답을 유도하면서 상품 판매까지 이끄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상품 설명을 강하고 정확하게 전달한 뒤 바로 "신청해드려도 괜찮겠어요?"라고 묻는 게 필수라는 것. 상대방에게 생각할 여지를 줄수록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되는 말도 있다. 주로 상대방을 '현혹'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 '100% 환불이 된다'는 말 대신 '공제'나 '차감'된다고 말한다. '무료'라는 말을 써서도 안되고 대신 '경제적'이라고 표현한다. '반값' 등 비속적인 표현보다는 '50% 할인' 등의 용어를 쓰기도 한다. 상담원 박모(37·여)씨는 "그냥 '이런 서비스가 나왔으니 가입하라'는 식으로 권유하면 무조건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성공률을 높이려면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내면서 기분을 맞춰주기보다는 무뚝뚝하더라도 상품 설명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응도 제각각=사람마다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더라도 설명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다그치거나 일방적으로 통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상품을 한창 설명하는데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1분만 시간을 달라면 정말 시간을 재는 사람들도 있다고.

연령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20대의 경우 상품 안내를 꼼꼼이 듣고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 의사를 밝히는 편. 30대는 상품 설명을 모두 들은 뒤에도 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40,50대 이상은 '사람마다 다르다'는게 종사자들의 얘기. 얼렁뚱땅 듣다가 별 생각없이 가입을 하거나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상담원들은 "전국 각 지역 별로도 기질 상의 차이를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는 부정적이다. 전화 상의 안내만 믿고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 하는 탓이다. 서울 등 수도권 사람들은 잘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예스 or 노'가 분명한 편. 꼼꼼이 따져보고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가입한다. 부산 사람들도 '예스 or 노'가 굉장히 분명한 편이지만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뭐가 뭔지 몰라도 기분이 좋으면 '예스'라는 것. 전라도는 급하다. 빨리 요점을 말하라며 계속 다그치고 '왜요?', '무엇때문에요?'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상담원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은 충청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내비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맞춤형 설득은 필수='통신판매'의 기본은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것. 구매 의사가 있던 사람도 시원한 답변없이 같은 설명이 반복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이끌고 해지나 환불, 교환이 쉽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담원 전모(32·여)씨는 "'잠깐만', '짧게' 등에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금방 통화를 끝낼 수 있다고 얘기한 뒤 설명을 진행하는 편"이라며 "경험 많은 상담원들의 경우 1분 정도만 통화를 하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바쁜 세상, 텔레마케터의 상품 권유를 일일이 들어줄 여유는 많지 않다. 구매의사가 없다면 빨리 통화를 끝내주는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이다. 감정을 상하지 않고 통화를 빨리 끝내려면 상품에 관심이 없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해야한다. "죄송하지만 제가 그 상품에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밝히는 식이다. "글쎄요"나 "잘 모르겠어요" 등 뉘앙스를 풍기는 반응은 금물이다. 상담원들은 약간의 구매 여지만 있더라도 무조건 권유를 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이다. 보험 상품 가입 권유의 경우 "내가 연금보험, 상해보험, 변액보험 등 모든 종류의 보험에 가입돼 있어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된다.

자존심을 긁거나 비하하는 식의 상품 권유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좋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을 현혹하거나 상처를 주는 권유 방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위해 그 정도 투자도 못하세요?", "한달에 1만5천원도 부담되시나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냥 끊어버려도 좋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설득의 기본기 '기브 앤 테이크'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결코 남을 설득할 수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고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채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회심리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가 저서 '설득의 심리학'을 통해 밝힌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먼저 양보하라(상호성의 법칙)=내가 양보해야 상대방도 양보를 한다. 우선 상대방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 뒤, '그게 어렵다면 이거라도'라는 식으로 원래 원했던 부탁을 하는 식이다.

◆작은 약속부터 시작하라(일관성의 법칙)=사람들은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 보이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긍정적인 대답을 끌어내는 질문이나 작은 약속을 승낙하면 이를 빌미로 한 더 큰 요청에도 '노(no)'라 대답하기 힘들다.

◆'다른 이들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라(사회적 증거의 법칙)=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할 때 상당부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가'에 기반을 둔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선택을 한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공통점을 찾아라(호감의 법칙)=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상대방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고 칭찬을 아끼지 말자. 또한 상대방과 공통점을 찾거나 일부러라도 따라하면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권위를 등에 업어라(권위의 법칙)=사람들은 유명인이나 권위있는 모습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럴듯한 직함이나 비싼 옷, 자동차로 치장하고 유명인이나 전문가의 분석을 붙이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라(희귀성의 법칙)=희귀해질수록 가치는 높아진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러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보다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러이러한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장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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