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울 할매 얘기같은 아프리카의 "옛날에~"

들판의 아이/아마두 함파테바 지음/이희정 옮김/북스코프

아프리카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 탄자니아 세렝게티 공원의 이글이글 끓는 대지, 사자와 코끼리, 새까맣고 깡마른 아이들, 쫓고 쫓기는 야생동물과 피비린내나는 내전, 그들을 돕자는 국제구호단체 사람들의 호소, 피의 다이아몬드 전쟁, 노예선, 인종차별…. 어쨌든 유쾌한 장면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몇몇 사람들의 시각이 두드러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에 우울한 장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오래된 문화가 있고,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춤과 이야기를 사랑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땅. 오랜 식민지배 아래에서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지은이 아마두 함파테바는 1900년 즈음(당시 아프리카 사람들 중에 출생시기가 정확하지 않은 게 어디 작가뿐일까.) 태어나 1991년에 사망한 전통학자다. 평생 아프리카, 특히 그의 고향 서아프리카의 구전전통을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가계에 얽힌 역사와 스무 살 때까지 삶에 대해 오직 기억에 의존해 글을 썼다. 지은이는 "아프리카에는 문자 없이 구전으로 역사와 문화가 전해지는 전통이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억은 밀랍 판에 찍어내듯 구체적이다. 문자가 없다고 해서 역사와 문화가 박탈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기억과 구전….

아프리카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를 전승하는 방식은 우리 조상들의 그것과 닮았다. 우리 역시 수많은 이야기들을 겨울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해졌다. 오랜 세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전승하는 동안 나쁜 이야기는 많이 빠지고,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가 남았다. 손자 손녀에게 나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프리카 사람들 역시 그랬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풍요롭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야기를 재현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준다. 그래서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처럼 요약해서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역시,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 것을 지루해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노인은 저녁마다 마당에서 이야기판을 열었고 아이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은 자연스럽다. '아프리카의 말하는 노인 도서관'은 조명시설이 필요 없는 아주 훌륭한 도서관인 셈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들판의 귀' '젖의 여왕' '암쿠렐(꼬마 이야기꾼)'로 불리는 것은 음미해 볼만하다. '들판의 귀'로 불린 사람은 들판에서 들리는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모든 자연의 말과, 자연 현상이 지식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늙었다. 그러니 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에 1, 2년의 시제 오차는 문제되지 않는다. 시제를 무시하고 과거를 마치 현재의 경험처럼 되살리듯 묘사한다. 이런 이야기 방식이 서구사람들에게는 혼란을 주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를 '하나의 검은 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책은 아프리카의 전통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모든 아프리카는 다른 아프리카'이니까.

지은이 아마두의 자전적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양한 부족과 그만큼 다양한 관습과 종교, 역사와 시도 흥미롭다. 575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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