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강 전문' 정욱호 대구산업정보대 명예교수

정욱호(61) 대구산업정보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그는 소위 '특강 전문(?)' 교수다. 그가 거치지 않은 경남북의 교육기관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 부산시 연제구청과 대구시 중견관리자 양성과정 등 공무원 연수 과정과 계명대 '행복한 가정 만들기 프로젝트', 부산 건강가정지원센터, 대구 정신보건센터연합 등 각종 기관에서 강단에 섰다. 영천, 포항, 경주 등 경북의 청소년상담실과 경남북 각 지방 교육청 교원연수, 국방부 병영문화 혁신 특강 등도 그가 거쳐간 특강 목록에 올라있다. 지역의 의료기관과 대기업은 물론이고 올해부터는 지역의 노인복지관을 다니며 노인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상담심리학 교수에서 특강 전문 교수로

그가 품 안에서 너덜너덜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은 전화번호와 시간, 암호 같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강연 일정을 메모한 수첩이라 했다. 22일 하루 일정만 봐도 오전 10시 경북 영천 어린이집, 오후 2시 대구 모 어린이집, 오후 5시 울산 어린이집 관계자 모임이라는 식이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해요. 혼자 운전하며 가는 길이 힘들지만 내가 필요하다는 부탁이니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아요."

그가 원래부터 특강에 매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정 교수가 25년간 몸담았던 교정을 떠난 것은 지난 2004년 3월. 정년을 8년이나 남긴 상태였다. 스스로 떠난 학교였지만 무력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 교수는 그 당시 "마치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는 잠수함 같았다"고 털어놨다. "바뀐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게 꿈이었으면…'하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할 때면 그저 인생의 패배자가 된 듯했죠." 안되겠다 싶었다. 무기력한 현실을 벗어나려면 다시 강단에 서는 길밖에 없었다. 바빠진 몸만큼 정신적인 기력까지 회복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였다.

정 교수의 강연 재료는 언제나 '자신 그리고 가족들의 삶'이다. 그가 말하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 특강법 역시 하나뿐인 아들과 겪었던 갈등이 주 재료다. "아들이 고1이었을 때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했어요. 내 자신이 전문가인데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홧김에 아이를 쥐어박고 말았지만 지금은 왜 그랬나 후회가 됩니다. 부적절한 이성교제나 탈선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화를 통해 막았어야 했는데 뒷북을 친 셈이니까요. 같은 경험을 하신다면 절대로 뒷북 치지 마세요. 그리고 대화의 통로를 열고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라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세요."

◆자기고백을 재료로

그는 '자기고백'이라는 재료에 '웃음'과 '눈물'을 곁들여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풀어낸다. 인간 관계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렵고 기술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의사와 환자 등 조력자와 피조력자의 관계는 언제나 오해와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려면 기술이 필요합니다. 바로 '대화'의 기술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력자인 의사가 피조력자인 환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의사 입장에서는 친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환자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습니다. 바로 의사 소통의 기술이 부족한 거죠. 이럴 때는 의사가 환자들의 말을 반복해주는 게 좋습니다. 가령 환자들이 '배가 아프다'고 증상을 얘기하면 '아, 배가 아프시군요'라고 반복해주는 것이죠. 그러면 환자는 '의사가 내 입장을 이해해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정 교수는 최근 '알몸 졸업식'으로 충격을 주고 있는 청소년들의 행태도 "의사 소통의 부재 탓"이라고 진단했다.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분노가 비뚤어진 해방감과 맞물려 벌어진다는 것이다. "담임 교사들은 새학년이 된 학생들을 맞이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교사에게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의사 소통 과정이 없으면 아이들은 마음 속에 분노감을 갖게 되고 일부는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어보세요. 세상이 달라집니다"

정 교수는 특강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 개선 소모임에도 큰 애정을 갖고 있다. 가족 간의 갈등은 원만치 못한 부부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마련했던 소모임은 그의 확신에 힘을 실어줬다. 정 교수는 지난해 11월 부산 사회체육센터에서 열린 특강 참가자의 요청으로 부부 관계 개선 소모임을 갖게 됐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사회 유력인사인 부부 14명이 모여 집단 상담을 갖기로 했다는 것. 남편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강의실 밖에서도 내켜하지 않는 남편들과 손을 잡아 끄는 아내들의 실랑이가 벌어질 정도였다고. 그러나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고 고마웠던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부부의 어색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정 교수는 "소모임에 참석한 한 여성이 '남편이 당신과 17년 동안 살면서 나누었던 얘기보다 그 자리에서 10분간 나누었던 대화가 더 깊었다고 하더라'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오는 26일부터 이재명 염광제일교회 목사를 초청, '칭찬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교육적이고 치료적인 칭찬 기술을 통해 가족 간의 감동과 행동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시도다. 매주 1회씩 6주간에 걸쳐 진행할 계획.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참 없어요. 말 한마디만 다르게 해도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가족 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건강한 꿈을 갖게 하는 것, 작은 변화가 시작이에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정욱호 교수의 강의록

#1992년 4월 아버지의 칠순 잔치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하객들 앞에서 아버지는 "내게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암으로 떠났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세상을 떠날 때를 알고 준비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소원은 제 두 눈과 신장을 다른 이에게 기증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 몸으로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마지막 소원은 편안히 눕지 않고 엎드려 숨을 거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려 합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버지는 병원에서 임종하셨습니다. 바라시던 암은 아니었지만 꼭 1주일 동안 입원을 하신 뒤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두 눈은 다른 이에게 기증됐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아버지를 엎드리신 모양으로 안장을 했습니다. (한 자활후견인 대상 특강에서)

#어머니는 우리 7남매에게 늘 '박사'라고 불렀습니다. 행여 형제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박사들이 싸우고 그러면 안 되지"라며 꾸중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둘째 동생은 결국 등록금이 없어 고교 1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박사'라고 부르셨습니다. "학교도 못 다니는데 무슨 박사냐"며 동생이 발끈해도 "넌 분명 박사가 될 거다. 꼭 기회가 올 거다"며 위로하셨습니다. 동생은 훗날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을 했고, 미국으로 유학까지 떠났습니다. 지금은 지역의 한 신학교의 교수이자 목사로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현실이 된 것이죠.('말이 씨가 된다'는 주제의 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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