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6개월간의 산고랍니다" 신차가 나오기까지

9단계 디자인-설계-생산까지…

자동차는 남자의 로망이다. 남자들 대부분이 멋진 차에 가슴이 뛴다. 여자들도 좋은 차, 예쁜 차에 눈이 끌린다. 해가 바뀌면 각 자동차 회사들은 다양한 신차로 고객을 유혹한다. 기아자동차는 지난달 3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를,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8일 대형 세단 '제네시스'를 선보였다. 쌍용자동차도 3월 출시 예정이던 최고급형 대형 세단 '체어맨W'를 27일 앞당겨 출시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급속 다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맞추기 위해 신차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 가상캐릭터 '닥터 더미'(Dr. Dummy·충돌실험용 인체모형)로부터 신차개발 과정에 대해서 들어본다.

(닥터 더미 등장) 안녕하세요. 한 대의 신차가 시장에 출시되기까지는 보통 6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신기술 및 디자인 개발, 프레스 가공, 차체 조립, 도장, 의장, 그리고 테스트 및 출고 등의 과정입니다. 특히 신기술이나 디자인 개발은 날로 다양해지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고급 세단에 적용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mart Cruise Control : 레이저 센서로 엔진과 브레이크를 스스로 제어해 앞차와의 거리를 조정하는 기능)이나 '어댑티브 헤드 램프'(Adaptive Head Lamp ·커브길을 돌면서 핸들 방향에 따라 전조등의 방향도 미리 바뀌는 기능) 등이 대표적입니다.

◆ 9단계 거쳐 디자인 완성

자동차의 얼굴인 디자인은 요즘 기술을 압박하는 수준입니다. "새 디자인에 맞지 않으니 엔진을 새로 제작하라"는 말도 듣는다고 하지요. 패션쇼가 계절을 앞서 나가듯 모터쇼가 활성화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기아자동차가 유럽 내 실력자인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디자인부문 책임자(CDO)로 영입한 것이나, GM대우가 부평 디자인센터에서 차세대 제품들을 사전에 선보이며 자사의 디자인 역량을 자랑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동차 디자인은 대략 9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바로 '디자인 기획'이죠. 미래의 스타일링을 예측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시장조사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마케팅 단계인데, 경쟁 차종이나 모터쇼 등은 좋은 정보처입니다. 신차개발 기간이 평균 26개월 정도인데 요즘 자동차 업계는 1년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업체마다 개발 기간 단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요. 일본 업체들이 최단 18개월 정도로 많이 짧은 편인데, 제품개발 비용 절감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도 개발기간 단축은 선결과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취합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차종을 구체적 이미지로 만드는 '스케치' 작업과 디자인 안을 추려서 보다 실제 차에 가깝게 표현하는 '렌더링(Rendering)' 작업을 거칩니다. 4단계부터는 입체 작업으로 넘어갑니다. 클레이(Clay· 점토)를 이용해 실제 입체화하는 '4분의 1 스케일 모델제작'입니다. 이 모델은 풍동 실험을 통해 공기저항계수 측정시에 활용합니다. 다음 과정은 '디지털 모델 제작'인데, 2차원으로 진행된 디자인 안이나 스케일 모델 중에서 3, 4개안 정도를 골라 컴퓨터로 3차원 작업을 합니다.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종합기술연구소의 디자인연구소 내 '디지털 영상 품평장'은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차의 외관과 실내 디자인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즉석에서 차 색상도 바꿀 수 있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가 각종 계기장치를 시험 작동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실제로 모형을 만들 필요도 없어진 것이지요. 디지털 모델 평가는 높이 25m 돔형 천장으로 꾸며진 실내 품평장에서 합니다. 차량 7대를 동시에 올려놓고 품평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결정된 안을 기본으로 1대 1 실물 크기로 제작하는 '모델제작' 과정이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컬러 디자인'이 결정됩니다. 소비자 구매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는 만큼 자동차 회사에서 들이는 수고도 대단합니다. 컬러 선호도가 국내외가 다르고, 아시아, 미국, 유럽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디자인 확정 뒤 소비자 품까지

디자인이 결정되면 차체와 부품 등에 대한 설계에 들어갑니다. 참고로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은 평균 30~40개월의 개발기간을 거쳐 탄생합니다. 지난 1991년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알파(소형차용) 엔진이 국내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이죠. 이후 베타(1995년·준중형차용), 엡실론(1997년·경차용), 델타(1998년·중형차용) 등을 거쳐 현재 람다(2005년·대형차용), 감마(2006년·소형차용)까지 개발이 돼 있습니다. 국내 시판 제네시스에는 바로 람다엔진을 장착했습니다.

자, 이젠 공장을 둘러볼 차례입니다. 바로 양산을 위한 과정인데 자동차 외형을 만드는 프레스 가공이 먼저입니다. 프레스 기계에서 찍어낸 패널들은 각종 로봇 용접을 통해 자동차의 골격인 차체를 만드는 '차체 조립'으로 넘어갑니다. 자동차 한 대가 완성되려면 무려 4천800번이 넘는 용접작업이 필요합니다. 차체가 완성되면 검사용 로봇이 차체의 형상과 뒤틀림, 용접점 등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검사한 뒤에 차체만 '도장 공정'으로 보내집니다. 바로 자동차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죠.

자동차 페인트는 미용 기능뿐만이 아니라 차체 부식 방지, 주행 중 소음과 먼지, 빗물 유입 차단 등 복합적인 역할을 합니다. 전처리 공정을 통해 각종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차체에 페인트 칠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어 이뤄지는 전착공정은 볼 만합니다. 차 전체를 거대한 탱크에 담가 색칠을 하기 때문이죠. 대형 전기오븐에서 건조된 뒤 중도(2차 페인트작업), 다시 건조, 상도(3차 작업) 및 건조 작업을 거치면 반짝반짝하는 차체가 준비됩니다. 이 차체는 자동차 조립의 마지막 공정인 '의장 작업' 구역으로 옮겨집니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3만여개의 부품들로 차체를 채우는 과정이지요. 엔진과 트랜스미션, 각종 계기판, 의자, 타이어 등이 컨베이어 공정을 통해 빈 차체를 가득 채웁니다. 이것도 끝은 아닙니다. 성능안전 테스트와 실제 도로 조건과 같은 상황에서 주행 및 가속성능, 진동, 소음, 제동 성능을 점검하는 주행 테스트가 남아 있지요.

보통 주행차량은 위장막으로 가리고 도로에 나섭니다. 이런 차량을 찍은 사진을 '스파이샷'이라 하는데, 제조사 측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땅이 좁기 때문에 일반인의 눈을 피할 수가 없죠. 현대자동차 관계자 말로는 "도로주행 테스트할 정도면 곧 출시 예정이라 그래도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이것마저 끝이 나면 드디어 신차가 시장에 풀립니다. 대대적인 런칭 기념식도 열리지요. 영남이공대학 자동차과 어느 교수님 말대로 자동차는 기계공학기술의 총집합체이고 개발됐다고 해서 바로 팔 수 있는 물건도 아니기에 신차 개발은 시간과 비용 싸움입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만 해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총 5천억원이 투입된 거대한 프로젝트였지요.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자문=영남이공대학 자동차과 / 사진제공=현대자동차

▨ 신차 이름은 어떻게 짓나요?

이름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듯이 자동차 제조사들은 신차 이름을 짓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부르기 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이 자동차 판매에 영향을 끼친다. 자동차의 이름은 프로젝트 단계에서는 보통 GK(투스카니)니 BH(제네시스), W(체어맨) 등 알파벳 머리글자로 이루어진다. 어떤 종류의 차종인지 아무도 상상 못하게 하는 일종의 보안책이다.

소비자에게 직접 호소하는 자동차명은 시판 단계 이전에 짓는다. 대부분 영어 단어를 쓰거나 단어를 합성한다. 제네시스(Genesis)는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를 '창조'한다는 뜻을, 체어맨(Chairman)은 '의자·회장' 등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레이스(Grace)는 단어 뜻 자체가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유명한 지명도 자동차 이름으로 쓰인다. 옛 모델인 르망(Le Mans)도 프랑스의 지명이고, 최근 출시된 모하비(Mohave) 또한 사막 이름이다.

영남이공대학 자동차과의 한 교수는 "각 사마다 개발목표와 판매대상에 맞춰 차 이름을 짓는다. 특허청에 앞으로 쓰겠다고 등록한 이름까지 하면 수만 건에 달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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