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더미' 내가 궁금하다고요?

"쉿~ 많이는 못 알려줘요"

안녕하세요. 다시 닥터 더미입니다. 이번엔 제 가족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자동차 충돌 테스트 장면 속의 인체 형상 기억하시죠? 그게 바로 저 더미(Dummy)입니다. 한국에서 쓰는 미국산 더미는 성인 남성이 178㎝, 78㎏ 정도 됩니다. 아시는 대로 충돌실험 결과 더미에게 생긴 상해치 정도에 따라 NCAP(신차평가제도)의 별표시 등급이 달라지죠.

더미의 바깥은 고무, 내부는 인체의 갈비뼈와 같은 탄성력을 가진 금속 구조물로 돼 있습니다. 실제 인체와 최대한 비슷해야만 하니까요. 가속도계, 로드셀(load cell : 충돌시 받는 하중을 측정하는 기기), 변위계 등의 첨단장비가 내부에 장착돼 충돌 결과를 알려 줍니다. 충돌의 크기와 움직임 등을 측정하는 센서는 머리와 목, 가슴, 복부, 골반, 정강이 등에 설치합니다. 복부에 있는 센서로는 임신부가 받는 충격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더군요.

시험에 앞선 과정도 아픕니다. 먼저 머리를 떼서 40㎝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등 각 부위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에 그렇습니다. 이후에도 무거운 추로 갈비뼈를 세게 때려가며 확인을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고 계측 장비를 챙기고 나서야 비로소 차에 앉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이브리드 III형' 가족은 전신에 44가지 데이터 채널이 있어서 보통 100~150밀리초의 충돌 순간에 3만~3만5천개의 자료를 기록합니다. 이 자료는 가슴에 있는 임시 저장소에 저장됐다 테스트가 끝난 뒤 컴퓨터로 옮겨집니다.

우리 몸값은 1억원이 넘습니다.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모든 장비를 구비하면 2억원 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비싼 셈이죠. 그래도 차량 내부가 안전해서 차는 부서져도 우리 몸은 잘 안 부서지니 반복시험이 가능하죠. 부서져도 파손 부위만 갈아 끼우면 됩니다.

우리 더미 가족이 처음 인간과 손을 잡은 것은 1949년. 미국의 앨더슨 연구소에서 '시에라 샘'이라는 시조가 비행기 사출장치 안전벨트 시험용으로 조종석에 앉은 때였습니다. 오늘날 '50% 평균의 남성' 더미의 시조인 '하이브리드 I형'께서는 1971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다지요. 신장이나 체중, 비례 등에서 성인 남성의 중간치 정도 된다는 의미이니 가장 평균적인 풍채를 지니셨죠. 시에라 샘은 '95% 평균 남성'이어서 그만큼 크고 무거웠거든요. 더미는 이후 1972년 '하이브리드 II'형, 1976년 '하이브리드 III'형으로 점점 진화했습니다. 가족도 생겼는데, 95% 평균 남성인 '큰형'(big brother), '5% 평균 여성'인 아내, 그리고 10세, 6세, 3세의 아이들입니다. 측면충격 시험용 더미(SID), 후면충격 시험용 더미(BioRID), 어린이 충격시험용 더미(CRABI), 개량형 더미(THOR) 등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는 80여 명이 있다는데, 더미의 구성이 어떤지는 기밀이라고 합니다. "어떤 종류의 더미가 더 늘어나는지 살펴보면 그 회사가 어떤 분야의 기술 개발을 하고 있는지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어쨌든 저희 가문의 활약으로 자동차 안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우리 더미 가족은 상처 아픈 것도 잊고 충돌용 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조문호기자

♠ 우리 집에 놀러온다고요? 카메라, 휴대전화, 녹음기, 전부 'No'

현대기아자동차의 신차 개발연구 현장인 남양종합기술연구소(이하 남양연구소)는 현대기아차가 지난 1986년 12월 경기도 화성시 남양만 간척지를 매립해 설립했습니다. 전체 면적 약 347만㎡(약 105만평)의 부지에 10년간 총 3천500억원을 투자해 완성했죠. '한국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세계적 규모의 연구개발 거점'으로 8천여명의 고급인력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는 만큼 보안도 철저합니다.

카메라는 물론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 녹음기 등은 가져갈 수 없습니다. 보안 서약서를 써야 연구소 내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안유출 방지 때문이라니 어쩔 도리야 없습니다만…. 남양연구소 핵심 시설 가운데 '파워트레인 연구소'는 차량 엔진과 트랜스미션 개발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석·박사를 포함해 1천900여명의 연구원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인데, 현대가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에 5천700만달러의 기술료를 받고 판 쎄타 엔진을 개발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총비용 450억원을 들인 '풍동연구소'는 연구소 내에서 가장 비싼 시설입니다. 8.4m(아파트 3개 층 높이)의 송풍기를 통해 시속 200km의 바람을 내보내 공기저항 등을 테스트합니다. 실험차량 밑에 수치를 계측하는 정밀 저울을 달고 실험하는데 저울 가격이 40억원이랍니다. 굉장하죠? 다음으로, 차량 안전도를 검사하는 '충돌테스트장'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12월 완공됐는데, 최고 시속 100km까지 충돌시험이 가능합니다. 신차 출시 때까지 150~200대 정도 실험을 한다는데, 실험비용이 최소 1천만원, 실험용 차량 제작에 1억~1억5천만원 정도가 든다니 정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곳이죠. 실험용 더미만 해도 1개에 7천만~8천만원이나 합니다.

고속주행시험로는 총연장 70km로 시험로 34개에 노면종류만 71종이나 됩니다. 차량의 조정 안정성과 선회 성능, 제동 성능 등 모든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곳이지요. 디자인 관련 시설은 특히 접근이 어렵습니다. '디자인 연구소' 내에는 첨단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영화를 보듯이 신차 외관과 실내 디자인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디지털 영상 품평장'이 있습니다. 컨셉트카 디자인과 차량 내외장 신규 컬러 개발을 담당하는 곳도 디자인 연구소입니다. 설계센터와 함께 슈퍼컴퓨터와 100여대의 컴퓨터, 세밀한 설계를 위한 350여대의 그래픽 단말기를 통해 디지털 설계를 구현하는 곳이죠.

어때요? 상당히 흥미롭게 들리지 않나요? 일부를 제외하곤 공채를 통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그러면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차량이 출시돼 도로 위에서 달리는 것을 보면 연구원으로서 희열을 느낀다"는 한 연구원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죠.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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