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40여년 전 본 그 모습 아련

내가 숭례문(그때는 남대문이라고 불렀다)을 처음 본 것은 1961년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서다. 영천 역에서 저녁 6시에 출발한 중앙선 완행열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한 것이 새벽 6시쯤, 다시 처음 타보는 전철을 타고 창 밖으로 본 남대문과 경무대, 창경원, 서울 남산의 방송국 등 시골 중학생들의 서울 입성의 추억이 아련해 지기만 하다. 당시 소년의 마음으로 전철 창가로 스쳐 본 남대문의 웅장한 모습이 국사 시간에 태조 이성계의 조선 초기 역사라고 배운 것을 실제로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동요 속에서 자리한 남대문이 숭례문 현판을 걸고 있다는 것도 국보 1호라는 문화재적 가치도 모른 채 그냥 남대문이라고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보이지 않는 조상의 얼로 면면히 이어오고 있음을 불탄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음을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이제 국보 1호라는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을 지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가지고 수도 서울에 장엄하게 자리한 그 남대문이 처참하고 허망하게 불타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 숭례문!' 이번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에 때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국민적 토론의 장으로 연결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살아나 좀더 나은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루 빨리, 그러면서도 장중한 역사의 산 증거로 우리 곁에 숭례문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오현섭(청송군 현동면 도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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