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노래를 부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노래를 부를 때는 음정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곧잘 부르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누가 나한테 말을 시키면 말을 조리 있게 못하고 막 하게 된다. 그래서 왕왕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이런 판국에 왜 매일신문에서 날더러 이번에 당선된 새 대통령과 새 정부의 출범에 앞서 한마디 해달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대체 나처럼 노래를 불러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새삼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 부탁하거나 당부할 말이 뭐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우리 국민의 유례없는 일방적 지지를 받고 탄생되었다.
지지를 받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앞으로 5년 동안 일을 잘 해 달라, 일을 잘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나라살림을 이번엔 당신들께 맡긴다. 부탁한다. 뭐 그런 믿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우리 국민들은 선거기간 중에 직접 보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잘 하겠다. 경제제일의 정책을 펴겠다. 문화정책을 활성화시키겠다. 몸을 바쳐 일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우리는 그래 알았다. 그럼 다음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며 도장을 찍어서 뽑아 줬던 것이다.
내 얘기는 그렇게 방금 뽑아 준 팀에게 연달아서 여기다 콩 심어라. 저기다 팥 심어라 하는 건 너무 쪼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망설여진다는 얘기다.
나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나한테도 근사하게 당부할 말이 있다. 세금 좀 덜 내게 해 달라. 지난 5년간 실패한 부동산 정책 좀 활성화시켜 달라. 문화 정책 좀 살려 달라 등등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털어놓고 말해서 이건 그야말로 건성으로 하는 당부에 불과하다. 말잔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세금 폭탄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세금을 낼 수 있을 만큼 수입을 올렸다. 지난 5년 동안 부동산이 치솟았다고 아우성이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값은 두 배 이상이나 뛰었다. 몇 달 전 국세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조영남이 연예인 중에서 제일 비싼 집에 산다. 비나 박진영이나 원더걸스보다 더 좋은 집에 산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기분이 째졌다.
아! 내 삶은 성공한 삶이구나!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 새 정부에 문화부장관으로 내정된 내 연예계 동료 유인촌의 재산이 무려 100억이 넘는다는 발표를 보고 나는 헉! 그렇지 않아도 납작한 코가 더 납작해지고 말았다.
닭살스런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유인촌보다 적은 재산을 가지고도 잘 살 수 있다. 나는 됐다. 따로 부탁하고 당부할 말도 없다. 어련히 잘들 해나갈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 믿는다는 뜻이다.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그것이다. 기대의 끝은 종종 쥐약이다. 기대하는 쪽은 잘 모르지만 기대를 받는 쪽은 기대를 받는 만큼 스트레스가 된다. 기대치의 함수라는 것이 있다. 가령 어느 무대에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할 때 지나치게 세계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어쩌고 저쩌고 잔뜩 띄워 놓으면 당사자는 너무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결과 관객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실망하게 된다.
매사가 그렇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이 따른다. 심플하다. 실망을 줄이려면 기대를 줄이면 된다.
그래서 나는 새 대통령 새 정부에게 부탁하거나 당부하거나 뭘 기대하는 대신 그 자리에 신뢰를 얹어 놓고 싶다. 이때 나의 신뢰는 어지간한 신뢰가 아니다. 무한 신뢰다. 나는 지난 선거 막바지에 이 나라 대표정치인 홍준표, 유시민, 노희찬, 정범구와 함께 소주잔을 돌리며 이색 TV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믿어 달라. 한 사람 한 사람 그 전체를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토록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나서서 나라 살림을 맡아주겠다는데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 이제 이 나라 우리 국민이 귀하들께 일터를 제공해 줬다. 맘껏 일해라! 딱 한 가지 5년 후에 실망했다는 소리만 안 나오게 하라! 탕! 출발신호가 울렸다. 나가라!
조영남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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