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덕실마을은 물론 지역이 온통 잔치 분위기다. '이제부터는 뭐든지 잘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야말로 지난 15년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깨끗이 청산할 때다. 대통령 당선일부터 대통령 취임식에 이르기까지 가졌던 이른바 'TK정권' 재창출이라는 자기만족에서 깨어나야 한다.
최근 지역에서는 '잃어버린 15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YS 정부 이후 TK 견제가 본격화돼 지역 출신 정부 고위공직자의 씨가 말랐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지난 15년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실을 재인식하고, 다시 한 번 우리지역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와신상담'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각종 정부정책으로부터 거듭 소외당하면서 '아직도 3대 도시'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4대 도시'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지역경제를 지탱해오던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고, 인재들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수십년간 정권을 창출해 온 지역이었다는 자부심마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정권이 바뀔 수 있음을 상상조차 못한 탓에 지역 출신 인재도 미처 챙기지 못했음을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지연 학연 혈연이 아닌 능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음을 스스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여명의 빛이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지역 출신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지역민들은 그동안의 패배감에서 벗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은 듯하다. 희망적인 전조요, 지역발전을 위한 긍정적 힘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지역의 희망을 논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지역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늘어난 것은 당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정권에 무조건적인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알아서 도와주겠지' 하며 손만 벌리고 있어서도 안 된다. 과거 TK정권 때처럼 청와대나 장관에게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제 우리 스스로 지역의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며,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얼마나 요구할 것인지, 우리 요구가 객관적으로 합당하고 설득력 있는지부터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얻어낼 것은 반드시 얻어내고 양보할 것은 미련 없이 양보한다는 전략을 확고히 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강구해야한다.
지역의 희망을 담을 그릇은 이제 갖추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빈 그릇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주요정책들에 대해 지역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검토해 가야 한다. 또한 '지역발전'이라는 최대공약수를 향해 대구경북의 에너지를 통합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은 이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거처럼 정책결정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편법으로 권력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오히려 지역의 리더십을 총동원해 중앙부처의 실무자들에게도 정중하게 지역현안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다고 해서 굴욕적 처사라 허물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당당한 자신감과 여유에서 우러난 겸손이라고 칭송할 것이다.
TK, 이제 대통령만을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MB는 이제 TK를 대표하는 지역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성공시대를 열어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MB를 자유롭게 놓아주자. 그리고 5년 뒤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MB를 고향민의 진심을 담아 환영하자. 그것이야말로 TK의 자존심을 되찾는 길일 것이다.
우동기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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