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구가 느닷없이 총선에 '한 번' 출마해볼까 라며 의견을 물어왔다. 자신의 고향에 출마하겠다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더니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어서 지금이라도 공당의 공천장을 받아들고 내려가면 해 볼만 하다는 자체분석을 제시했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그가 '만에 하나' 당선된다면 큰 일이다.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행운'을 이야기할 것이고 다음 총선에서는 더 많은 정치지망생들에게 허황된 희망을 던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4·9총선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서 '정치바람'이 든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않다. 한나라당 지역구 공천을 신청한 사람만 1천177명이었다. 그중 절반 정도인 546명만 1차 심사를 통과했다. 탈락자들중 일부는 무소속 출마나 다른 정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할 것이지만 '바람난'사람들이라고 해도 어긋난 말이 아닐 것이다.
시골면장도 논두렁 정기를 타고난다고 한다. 하물며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299명에 불과한 국회의원은 논두렁뿐만 아니라 밭두렁정기 정도는 겸비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수립이후 지난 60년간 배출된 '금배지'는 2천481명에 불과했다. 4년마다 '물갈이'가 되곤 하지만 4, 5선씩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도 꽤 된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이 되려는 정치지망생들 가운데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국회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이 상대후보보다 뛰어나고 당선가능성이 높다는 수치와 근거를 내세우고 있지만 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판·검사를 지내거나 사회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도층인사들이지만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는 동기는 '권력에 대한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에 와서 그들에게 '공자왈'하는 듯 들릴 게 뻔한 정치원론을 요구할 생각이 아니다. '저 정도 깜냥이라면 내가 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식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지는 말라는 얘기다. 국회의원이 되기위해서는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을 최소한 몇년 정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권력핵심의 추천을 받아 공천을 받기만 하면 금배지를 달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유력자를 찾아다니는 인사들이 부쩍 많아졌다. 일년에 한 두번 고향에 내려오는 일이 고작인 '서울사람'이 고향이랍시고 낙하산타고 내려오는 격이다. 어찌보면 그들은 3, 4선을 지낸 국회의원보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이다. 선거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도모하는 일인데 이 사람들은 어찌 저리 쉽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고만 하는 것일까.
논두렁·밭두렁 정기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정직과 부지런함과 다르지 않다.
서명수 정치부 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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