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입학을 동시에 하는 조카가 둘이나 있어서인지, 담임을 맡았던 고3 학생들 졸업이 있어서 바쁜가 싶기도 하지만 나의 설렘과 분주함의 원인은 은사님의 퇴임식 때문이다. 졸업식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이라 화려한 면이 있지만, 퇴임식은 평생을 업으로 했던 일을 그만두기에 쓸쓸하다.
그래서 퇴임식은 잘 하지 않으려 하거나 해도 조용히 치른다. 초등학교 5, 6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은사님의 퇴임 소식은 나에게도 슬픔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교직을 그만 두어야 할 정도로 늙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고 쓸쓸함이었다.
'나도 언젠가 교직에서 퇴임을 할 텐데…, 제자도 한 명 없다면 얼마나 초라할까'라는 생각에 선생님을 축하하려고 나섰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은 친구들은 핑계를 대고 못 오겠다고 할까봐 걱정도 들었다. 그렇지만, 웬걸. 친구들이 하나같이 꼭 참석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서울에 있는 친구들까지 평일임에도 오겠다는 말에 선생님의 뜨거운 정성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황보두화 선생님은 30년 전 벽지 상옥에 3년동안 계시면서 농구부를 만드셨고, 나에게는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그 곳은 젊은 선생님들이 기피할 정도로 포항에서 오지 중 오지였다. 기차 구경도 못해 본 친구, 수학여행 때 자동차를 처음 타 본 친구도 있었다. 한 학년이 30명 남짓한 숫자라 버스 대절이 안 돼 수학여행이 불가능했지만 선생님의 노력으로 경주로 가게 됐다. 수학여행은 친구들에게 많은 추억과 이야깃거리를 남겨줬다. 그때 재미있었던 일은 공중화장실에 처음 가본 친구가 세면대를 변기로 알고 소변을 본 일이다. 초등 6년생이 소변을 보기에는 세면대가 높아 쩔쩔 매던 친구의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들을 웃게 만든다.
포항 시내조차 농구부가 없던 시절에 선생님은 산골 마을에 농구부를 창단했던 것이다. 먼지 폴폴 나는 운동장 한 쪽에서 간식까지 챙겨줘가면서 지도를 해주었다. 그 결과 대구에 가서 경북도 대회 2회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도 이뤘다. 이렇게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은 한없이 크다.
이제 내가 교직에 있으면서 아버지가 되어보니 교사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새삼 깨닫고 있다. 내 나이가 그때 선생님보다 더 들었고, 그때의 내 나이만한 자식들을 키워보니 당시의 선생님들에게 참으로 고생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서, 남의 자식을 맡아 키우는 교사로서 균형을 잃지 않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깨우쳐가고 있다.
은사님의 사명을 이어받아 직분에 충실한 열정이 있는 교사로서 영광스러운 퇴임을 할 수 있길 빌어본다. 여운익향(餘運益香). 선생님의 남은 인생이 더욱 더 향기롭게 피어나서 건강하고 복된 일이 많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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