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 베트남 새댁의 '큰언니' 티하이엔

11년전 시집온 '지한파'…2년째 고충상담·통역 보람

▲베트남 새댁에게
▲베트남 새댁에게 '큰언니'로 불리는 티하이엔(39)씨가 베트남여성문화센터(VWCC)에서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베트남 새댁' 쩡류한(20)씨는 한달전 대구에 신혼살림을 차리자마자 '큰언니'부터 찾았다. "전화기 속의 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했어요." 그는 "한국에 시집오기 전 베트남에서 '큰언니'의 전화상담 덕분에 결혼생활에 자신감이 생겼고 한국문화를 많이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 티잉란(24)씨에겐 '큰언니'가 생명의 은인이다. "얼마 전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베트남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급히 '큰언니'를 찾았고 언니의 전화 통역 덕분에 급성맹장염을 치료할 수 있었어요."

이들이 말하는 '큰언니'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11년전 베트남에서 시집온 티하이엔(39·경북 칠곡군)씨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나 현지에서 2년 열애 끝에 결혼한 '지한파' 결혼이주여성이다. 그녀는 현재 베트남여성문화센터(VWCC·대구 서구 내당동)에서 2년째 베트남 새댁들의 고충을 전화로 상담해주고 통역까지 해준다.

이 때문에 그녀는 어린 베트남 신부들에게 '큰언니'로 통할 수밖에 없다. 하루 50통 이상의 전화상담을 하고 2, 3명은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상담을 벌인다. 남편이 크게 농사를 짓는 줄 알았는데 오고 보니 소작농이었다는 새댁부터 휴대폰을 쓰고 백화점도 자주 가고 싶다는 결혼 3년차까지 다양한 사연이 매일 쏟아진다.

그녀는 "남편과의 의사 소통 문제로 상담받는 새댁들이 가장 많다"며 "언어장벽이 베트남 새댁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또다른 고민거리는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다. "베트남은 부계 중심인 한국과는 달리 모계 중심이기 때문에 아내의 발언권이 강해요.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아내를 보고 고집 세다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나무라시죠."

그녀는 가족 갈등의 요소를 풀기 위해선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처럼 한국어 교실에 결혼이주여성들을 몰아넣고 한국 선생님들이 주입식 교육을 시키면 곤란해요. 특히 베트남 신부들이 갑자기 늘어난다고 급하게 하면 역효과가 나요. 하나를 하더라도 차근차근 해나가야죠." 그녀는 한국어 교실 등에서 먼저 시집온 베트남 선배를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 추천했다.

그는 베트남 신부들이 한국으로 오기 전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한국정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은 한국에 잘 알지 못하고 와요. 결혼 전 베트남에서 미리 한국어와 한국 풍습을 배울 수 있는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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