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이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수부외과학회에 논문 발표를 위해 출국했다. 당시 보스턴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던 여동생 부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방문을 했다. 성악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쳤던 여동생이 가족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과 결혼해 더 공부하겠다고 신랑과 함께 유학을 간 것이다. 양가의 도움도 크게 받지 않고 떠난 터라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빠로서도 그렇게 탐탁지 않았던 동생의 결혼이었고, 서로 친해질 기회도 없이 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악수를 하면서 굳은살로 가득했던 매제의 손바닥을 느끼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현대 음악 중에서도 재즈, 그 중에서도 붙어있는 두 개의 실로폰을 두 손으로 치는 비브라폰을 전공하던 매제의 양손에는 큰 콩알만한 굳은살이 여러 개 튀어나와 있었다.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넉넉한 형편에서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그들의 생활은 무척 힘들어 보였다. 형편없이 낡은 아파트에, 갓 돌이 지난 조카는 체중도 적게 나가고, 오래된 고물 자동차에 시동이라도 한 번 걸려면 보닛까지 열어 전기선끼리 불꽃을 일으켜야만 했다. 학비는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내준다고 해도 세 가족의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고, 수입이라고는 한인 교회의 성가대 지휘로 받는 봉사료와 드물게 있는 작은 연주회의 차비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경제 공황에 가까운 IMF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이들의 생활은 더욱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성악곡은 어느 사랑의 고백보다도 듣는 이로 하여금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고, 힘찬 행진곡은 어떤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연설보다도 더 큰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많은 프로그램은 꼭 정가를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회나 오페라, 심지어 전시회에도 초대권이나 공짜표로 가는 것을 아직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성악가나 악기 연주자들의 연주가 보이지 않는 성과물이라 그 가치가 폄하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소위 '예술'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힘들고 배고프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예술을 위해, 그리고 자기 만족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손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튀어나오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연주나 작품에 큰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더 큰 감동과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수혜자인 바로 우리들도 이들을 위해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젠 우리 주변에서도 크고 작은 음악회를 접할 수 있는 문화 공간들이 많아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음악회나 문화 행사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행사들로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질 수 있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이를 준비하는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 작은 후원금을 투자해 보는 것도 제값에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상현(수부외과세부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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