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보름 대목장까지 지나 제법 한산할 것이라고 보고 지난주 중 느긋하게 찾은 대구 서문시장 동산상가. 예상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였다. 상가가 활력을 찾은 것은 상인들의 꾸준한 이미지 개선 노력에다 젊은 상인들이 대거 가세한 덕분이다.
"재래시장이 죽어간다고요? 우리들이 있는 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예요. 3.3㎡짜리 양말가게라도 장사가 너무 재미있어요."
20, 30대 새내기 상인들이 젊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당당하게 가업을 이어가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상가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대학교 4학년인 김영호(26)씨는 3년 전부터 어머니를 도우며 양말, 모자, 스타킹 등을 판매하고 있다.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 물건을 하나하나 골라 파는 재미가 너무 좋아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그는 장사에 재미를 붙여 계속 이 길로 가고 싶어한다.
"열심히 뛴 만큼 더 벌 수 있어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대학강사인 30대 가게주인은 '투 잡'으로 숙녀복 장사를 택했다. 그는 2층 전체 상인의 3분의 2정도가 젊은 사람으로 바뀌어 품목변화에 성공했으며 인테리어도 훨씬 깔끔해졌다고 말한다.
"때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월급쟁이보다 나아요."
캐주얼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부부상인 김창일(31)·권승미(30)씨는 대학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장사의 안목을 넓혔다고 한다. 부인 권씨는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안 서로의 어려움을 알 수 있어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이라는 사회현상으로 차라리 자영업이 평생직장 같아요."
아동복 점포를 물려받은 한 20대 여성은 예전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게를 잘 안맡기려 했지만 요즘엔 수입이 더 낫다며 장사를 권장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가게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직업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입소문에 단골고객이 늘고 있어 시장 바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브랜드 출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병수(34)씨는 대학졸업 후 6년정도 법무사 사무실에 근무하다 월급쟁이의 한계를 느껴 장사를 택했다고 한다. 김씨는 젊은 고객들이 백화점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 가격을 확인한 뒤 시장에 오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물건을 싸게 판매한다고 말한다. 이 가게를 자주 이용한다는 20대 새댁은 출산용품을 세트로 구입했는데 백화점에 비해 가격이 30%정도 싼 편이며 손수건이나 아기로션 등 끼워주는 물건도 많다고 자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시장에서 물건 파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젊은 상인들의 장점은 뭘까? 김인갑 동산상가 2층 회장은 "패션이나 유행 스타일을 빨리 파악해 따라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대문시장의 유행상품이 바로 동산상가에 들어오기 때문에 한강 이남의 패션일번지"라고 자랑했다. 또 대부분 가게 운영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부모 밑에서 장사를 배워 상인 정신을 알고 있어 상가 경기를 살릴 줄 안다.
"판매제품이 다양해지고 취급 의류도 가게주인을 따라 젊어졌어요"
윤종식 1층회장·최광덕 3층 회장은 이구동성으로 아동복, 출산물, 숙녀복, 캐주얼 등 층별로 젊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제품들을 고루 갖춰 특성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동신발, 액세서리, 가방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캐주얼 점포의 경우 70% 정도가 젊은 층으로 주인이 바뀐 후 미시족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특히 매장의 분위기가 깔끔해 나만의 개성을 찾는 여성 단골고객이 자주 온다.
장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절한 서비스 정신이다. 김동주 동산상가번영회장은 틈만 나면 마이크를 잡고 "한번 찾은 손님들이 다시 가게를 찾을 수 있도록 상인들은 늘 겸손함과 친절함을 잊어선 안된다"고 상가내에 방송한다.
친절과 밝은 표정으로 무장한채 백화점 못지 않은 서비스를 한다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동산상가 상인들은 계속된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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