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쟁영웅에서 전쟁광으로…'람보4 라스트 블러드'

돌아온 람보.

1편이 나온 지 26년. 그 사이 람보는 더욱 포악해졌다. 원래 인정사정없는 그였지만, 마지막 편인 '람보4-라스트 블러드'(28일 개봉)에 이르러서는 목불인견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마지막 피바다'를 선사한다.

1편의 원래 제목은 '퍼스트 블러드'(1982·First Blood)였다. '먼저 건 시비' 정도가 될 이 제목이 2편부터 '람보'라고 당당히 제목에 올라선 것은 당시 레이건대통령 시절의 시대적 분위기가 한몫했다. 냉전이 무너지면서 미국 사회에 내재된 영웅부재의 불안감을 '람보'라는 가상인물이 씻어준 것이다.

'람보1'은 잘 만든 오락영화이면서 반전의 이미지까지 덧댄 영화였다. "수백만달러짜리 장비도 마음대로 했는데, 사회에선 주유기 하나도 제대로 못 만지게 한다"며 오열하던 람보를 기억할 것이다. 댄 힐의 노래 'It's a long road'를 뒤로하며 감옥으로 향하던 람보의 모습은 전쟁병기로 길들여진 한 인간의 긴 여정을 처연하게 보여주었다.

베트남(2편)과 아프가니스탄(3편)을 넘어 4편의 배경은 미얀마이다. 태국 북부 강가에서 뱀이나 잡으며 은자처럼 살아가는 람보. 그곳은 내전으로 참혹한 양민들이 학살되는 미얀마 국경지대. 어느 날 미국 교인들이 그를 찾아온다. 양민들에게 의약품과 식량을 전달할 수 있도록 길 안내를 부탁한 것이다. 처음 거절하던 그는 그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길 안내를 해 주지만, 결국 그들은 잔인한 정부군에 의해 생포되고 만다.

2주 후 교회 목사가 찾아와 구조팀을 이끌어줄 것을 요청한다. 결국 람보는 5명의 용병과 함께 그들의 구조작전에 나선다.

'람보'는 '록키'와 함께 실베스터 스탤론의 필생의 시리즈물이다. 지난해 그는 '록키 발보아'로 록키 시리즈를 끝맺었다. 사업가로 변신한 노년(?)의 록키가 다시 링에 선다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로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런 그가 '람보'마저 종지부를 찍겠다고 나오자 '스탤론의 못 말리는 허영심'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다.

'람보4'의 실베스타 스탤론은 올해 환갑이다. 핏줄이 튀어나온 우람한 육체는 탄력을 잃었고, 눈꼬리는 더욱 처졌고, 걸음걸이는 질척거리고, 단말마처럼 튀어나온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 보인다.

정작 힘을 잃은 것은 그가 뛰어든 과업이다. 실룩거리는 입술에서 겨우 튀어나온 그의 대사"의미 없이 살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위해 죽을 것인가." 베트남전은 더 이상 떠올리기 싫은 유물이 됐고, 세계주의 속에 그는 사라져야 할 망령이다. 그런 그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죽자고 덤비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순진하고 대책 없는 몇몇 민간인을 구하는 일. 이미 그의 '대업'(?)은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무차별 살생으로 영화의 힘을 얻고싶어 한다. 노심(老心)을 숨기기 위해 더욱 가혹해진 한 인간의 추한 뒤태라고 할까. 칼로 배를 가르고, 목을 베고, 총탄으로 인체를 짓이겨놓는다. 마치 무덤에서 나온 제이슨('13일의 금요일'의 살인마)과 프레디 크루거('나이트메어'의 살인마)가 전쟁의 화신으로 부활한 모습이다.

정부군은 누구고, 반군은 누군지에 대한 실체도 없고 더군다나 전쟁의 상처와 아픔에 대한 시각도 없다.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이 펼치는 호러무비에 불과하다.

오락성 속에 진지함을 녹여낸 1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람보4'는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할 옛 애인을 보는 듯하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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