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쥐약/정용주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없어진 산쥐들이 집안에 들끓어 쌀로 만들었다는 쥐약을 깨끗한 접시에 담아놓았더니 너무 잘 먹어 나중에는 미안한 마음이 다 들어서 쥐약 옆에 콩밥 한 덩어리 던져 주었는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콩밥은 그대로 있고 쥐약만 깨끗이 먹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된 오늘의 설화. 생각할 겨를 없이 숨 가쁘게 읽다 보니 슬픈 감정과 더불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오죽하랴. 날 밝아 저물도록 종일 헤매고 다녀도 손톱만한 밥주머니 채울 수 없는 게 동물의 운명인데 산에 들에 넘쳐나는 건 호랑이 같은 도둑고양이들.

도둑고양이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들의 마음이다. 독극물을 '깨끗한 접시'에 올려놓는 건 또 무슨 심사인가. 게다가 콩밥 한 덩이 던져놓는 건 또 무슨 동정심인가.

올해는 무자년, 쥐띠의 해다. 예견력이 뛰어난 동물이 쥐라고 신문마다 요란했다. 콩보다 쌀이 좋아서 쥐약을 먹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쥐죽은 듯 조용한 세상을 경험해보라고, 인간만 살아있는 조용한 지구를 경험해보라고 '깨끗한 접시'에 놓인 쥐약을 '깨끗이' 비우는 게 아닌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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