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들을 안은 최석훈(33·서구 비산동)씨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20일이 지난 석호는 아빠의 품이란 걸 아는지 울지 않았다. 26일 오후 동산병원 신생아실 구석. '감염실'이라고 적힌 명패가 도드라져 보였다. 최씨는 아들이 세상에 나오던 날에 이어 두 번째로 본 그날도 말을 잇지 못했다. "까꿍, 아빠야, 아빠"라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참 좋은 날 태어났는데…."
석호가 태어난 지난 7일은 설날이었다. 새해 첫날 아침. 최씨와 아내 박순옥(27)씨는 2세의 탄생을 상서로운 일이라 여겼다. 그간 힘겹게 살아온 터라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은 더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의사는 곧 이들 부부에게 뜻밖의 말을 전했다. '선천성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아기의 폐에 물이 차고 혈소판도 부족하다고 했다. 자칫하면 뇌에도 문제가 생겨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고단한 삶에 지쳐 있던 이들은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두려움에 목이 메어 몸서리쳤다. 지난 10개월 동안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최씨는 속울음을 토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자동차수리 서비스업을 하는 최씨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빈혈이 심해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던졌을 뿐, 정작 자신은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노라고 고개를 떨궜다. 별일 없을 거라고 허투루 여긴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아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에 울기만 하는 아내를 보며 최씨는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부부는 "가난이 죄", "아기에게 죄를 지었다"며 펑펑 울었다. 월세 13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며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책임지지 못한 후회로 최씨는 연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이 고팠나 봅니다."
최씨는 사춘기 시절이던 중학교 3학년 때 기막힌 얘기를 듣게 된 뒤부터 인생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말실수로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뒤, 아버지 어머니의 부부싸움도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모든 게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독립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최씨는 스무살을 넘기자마자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헤맸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 스물여덟이 됐을 때 4천만원을 모았다.
최씨가 아내 박씨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겨울. 박씨 역시 열여덟 되던 해부터 혼자 살았다고 했다. 박씨도 어머니만 생모였다. 가정에 정을 두지 못한 점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불행과 고통과 쓰린 심정을 이해했다. 어르고 달래는 동안 동병상련의 사랑은 그렇게 둘을 부부로 만들었다.
박씨는 아이를 가졌고 최씨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에, 잘못된 가정의 불행한 싹이 아닌 사랑의 결실이 곧 자란다는 생각에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래서 석호의 병은 이들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제 세상의 공기로 숨쉰 지 스무날이 지났을 뿐인 아들이 앞으로도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해야 한다는 사실을 최씨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저 20일째 꾸는 악몽의 한 토막이길 바라고 있다며 말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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