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걷고싶은 길]이천동 '수도산'

참나무 소나무 우거진 동네 사랑방

수도산 남쪽에 있는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수도산 남쪽에 있는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정(情)을 느끼기 힘든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삭막하기만한 도시생활. 싱그러운 자연과 사람의 정이 더욱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한 떨기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눈여겨보면 대구 곳곳에 자연과 호흡하고,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적지 않다.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곳'에서는 훈훈한 삶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이천동 수도산-

대구십경(十景)의 하나인 건들바위를 지나 남구청 방향으로 200여m를 가다보면 오른쪽에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수도산으로 알려진 곳. 산 동쪽에 자리잡은 서봉사와 유려한 산의 능선이 한데 어우러져 시원한 눈맛을 선사한다. 수도산은 인근에 있는 상아맨션을 비롯 이천동·대명동 주민들이 즐겨찾는 휴식처다.

수도산에 오르려면 건들바위네거리에서 명덕네거리 사이에 있는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를 거치는 게 가장 쉽다. 상수도사업본부 건물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곧바로 수도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 거리는 100m도 안된다.

주민들이 산을 찾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상수도사업본부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취재팀이 수도산을 찾은 19일 오전, 다소 쌀쌀한 날씨에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20~30여 명이 산을 찾았다. 60,70대 어르신들은 상수도사업본부 주차장~수도산 정상 부근의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걷거나, 산 남쪽에 마련된 공원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보인다.

상수도사업본부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숲길을 거쳐 수도상에 오르기 전 눈여겨볼만한 게 있다. 대봉배수지다. 그 앞에 있는 안내판에 따르면 1918년에 준공된 대봉배수지는 대구 최초의 배수지다. 대구의 인구가 3만 명이던 그 무렵 가창수원지에서 공급받은 물을 주민 5천여 명에게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도산이란 산의 이름도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산의 원래 이름은 삼봉산(三鳳山) 또는 기린산(麒麟山)이었다. 서봉사 사찰의 편액에는 기린산으로 표기돼 있다. 신라 진성여왕 때 이 부근에 저수지를 만들어 풍년이 들게 한 터줏대감의 세 아들인 대봉(大鳳), 봉덕(鳳德), 봉산(鳳山)이 살던 곳이 동네 이름이 됐고, 세 형제의 이름을 따 삼봉산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나무와 소나무·대나무가 우거진 이 산의 가장 큰 미덕은 걸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김종섭66) 씨는 "4,년 전부터 오전 9시쯤 1시간 정도 머물다 내려간다."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이 휴식처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자랑했다. 78세된 한 할머니는 "하루 2번 정도 올라온다."며 "친구들과 윷놀이도 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라고 덧붙였다. 산 남쪽의 공원에는 등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쉼터와 의자 등이 곳곳에 마련돼 있고, 족구장과 간단한 체육기구도 있어 운동하기에도 그만이다.

산 남쪽의 수도산 4길에는 알려지지 않는 명소가 또 있다. 대구상고 럭비부 등 운동선수들이 계단 뛰어오르기 운동을 했던 계단이다. 그 수를 세어보니 92개. 계단이 별로 없었던 1960년대에 운동선수들은 이 계단을 뛰어오르며 체력을 다졌다고 한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굵은 땀방울이 스며있는 것 같다. 계단 위에서 바라보는 달성 가창 쪽의 시원한 풍광도 좋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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