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쟁이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왜 이리 기분 좋은지 몰라. 종일 히죽히죽 웃는다니까. 늙어 주책이야."
의아했다. 36년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는 날.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들떠보였다. 열네 살 때부터 트럼펫을 시작한 그는 이미 '베테랑' 연주가로 정평 나 있었지만 연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수십년 동안 중·고등학교 악단을 책임지며 역동성 가득한 관악 합주를 만들어 낸 김영욱(62) 전 대구남부교육청 교육장. 그가 떠나던 날, 아니 대한민국관악연맹 초대회장으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하던 날. 그를 찾았다.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60대 음악 청년을 마주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종이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교직생활이 짤막하게 정리돼 있었다. A4용지 한장에 담긴 36년간 교직생활. "과거지사야 뭐 물어볼 것 있나. 다 비슷하지. 앞으로 계획부터 말해봅시다." 그에겐 공적(功績)도 과거 향수도 단지 앞으로의 삶을 위한 배경일 뿐이었다. 곧바로 인생 제2막 계획에 대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대한민국관악연맹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주 23일 창립 총회를 연 신생 단체예요. 관악협회가 수십년 동안 존재했지만 협회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지요." 비록 사단법인은 아니지만 협회가 전국에 포진돼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알력과 파벌 등 시끄러운 잡음이 들릴 법도 했다. 그래서 그가 나섰다. "40년간 음악 행정가로 일해 온 내게 음해성 비난은 쉽지 않을 겁니다. 단 2, 3년 정도만 관악 연맹에 몸담을 생각입니다. 후배들이 맘껏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면 언제든 떠날 겁니다" 결의가 묻어났다. 하나의 단체가 관악음악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는 그의 오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난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기존 단체와 차별화를 둘 생각이다. 전국 관악대 경연대회와 악기별 개인 경연대회 개최, 그리고 실력을 입증받은 악대와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진 관악 페스티벌. 그가 구상하고 있는 관악 연맹의 밑그림이다.
그는 최근 구미시를 다녀왔다. 관악 음악 예산이 편성된 구미에서 관악 음악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 "음악도 예술 활동도 모두 예산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습니다. 구미시민들에게 예산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공연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시작은 구미지만 그는 관악연맹이 전국 단체인 만큼 불러만 준다면 어디든 달려갈 태세다. "제 인생 2막에 동참해 주실거죠. 관악인이 하나되는 날 발 뻗고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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