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구청장을 보면 국회의원을 안다

신문사 편집국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하루종일 끊이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거나 사회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겠다거나 자신이 일하는 단체의 행사를 알리려는 이들이 찾아온다. 때로는 승진·전보 등으로 인사차 방문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에는 낯선 신사분들이 불쑥 찾아와 꾸벅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많다. 한참 일하다가 서는둥 마는 둥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받고 나면 그들이 내미는 명함은 한결같이 '예비후보 XXX'이다. 필자의 책상에는 그들이 놓고 간 명함이 수북히 쌓여있다. 예비후보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된다.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는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물갈이 공천이니 개혁공천이니 이런 저런 얘기가 많지만 '큰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집권에 공헌한 국회의원들은 무난하게 관문을 통과할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중앙무대와 동떨어져 있는 대구시민 입장에서는 이때 반드시 고려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기초자치단체장의 자질 문제다. 뜬금없이 구청장·군수 얘기를 끄집어내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역에서 단체장을 실질적으로 뽑은 분들은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재작년 5월 지방선거 때 구청장·군수의 면면을 알고 찍었다기 보다는 한나라당을 보고 '묻지마 투표'를 했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안다. 해당 지구당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기초단체장 후보자를 공천했다고 해도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후보자들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의 낙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쫓아다니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봤다. A씨는 누구를 통해 줄을 댔다거나 B씨는 진작부터 공을 들여 내정됐고 C씨는 중앙당에서 낙하산으로 떨어졌다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심지어 술·골프 접대는 물론이고 지역구 방문때마다 국회의원을 밀착 경호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물론 한국사회가 정(?)에 약하다고들 하지만 이런 분들이 모두 공천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연유가 있든간에 국회의원의 영향력하에 기초단체장에 선출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구청장·군수를 보면 그 지역 국회의원을 안다는 말이 나오게 된걸까.

지금까지 언론이나 시민들은 구청장·군수의 역량에 대해선 일정부분 묵인해온게 관행 아닌 관행이었다. 설령 자질이 부족하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기초단체장인데 어떠랴!'하며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늘 서울만 쳐다보다가 상대적으로 저차원 행정이라고 얕잡아보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해 최대 3천억원대부터 최소 1천억원을 집행하고 주민과 직접 접촉하는 최일선 기관의 수장인데도 그 중요성을 간과해온 점이 없지는 않았다.

요즘 몇몇 기초단체장들은 안팎으로 자질 논란에 휩싸여 있다. 무리한 사업추진이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일을 망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거나 조직장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신뢰를 잃은 경우도 있다. 중간에 불미스런 일로 옷을 벗은 구청장까지 있다. 그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을 공천하고 뽑히게 한 국회의원들이 아닐까.

자기 사람을 앉히고 나면 모든게 해결된다거나 주민보다는 자신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그런 자세로는 더이상 안된다. 설령 그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서 엄청난 일을 이루고 한국정치를 휘어잡더라도 과연 그게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선거구민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해놓지 않고 지역구 행사때 얼굴을 내밀고 선거공약을 이만큼 지켰노라고 떠벌리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뒤바뀐 것 같다. 굳이 주민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청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번 공천심사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공천장을 내준 기초단체장은 물론이고 광역의원, 기초의원의 성적표까지 함께 반영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그게 바로 국회의원의 바탕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잣대가 아닐까.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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