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입시의 덫에 걸린 논술

며칠 전 고교에서 논술지도를 하고 있는 교사 A씨의 전화를 받았다. "저~ 000입니다. 잘 계시죠. 뭐 하나 여쭤 봐도 됩니까? 김 기자님은 논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뜬금없는 질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글쎄요? 어떤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러자 그분은 "논술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난감했다. 질문에는 숨은 뜻이 있는데, 눈치없이 대답해 무식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을지 하는 생각과 함께 몸속에선 아드레날린이 분출됐다. "예, 개인적으로는 논술이 공부하는 방법과 창의력을 기르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속내를 털어놨다. 최근 서울의 일부 사립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폐지키로 한 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경북대도 논술 폐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이 훌륭한 인격체와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논술교육만큼 훌륭한 교육수단이 없다"며 자신은 그런 신념으로 학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논술시험 도입에 앞장섰던 대학들 스스로 논술을 버릴 조짐을 보이니, 허탈하고 허망한 심정이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의 일부 대학들이 논술시험을 폐지키로 한 것은 학생 모집 때문이라는 것. 논술시험이 없으면 아무래도 지원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대학들이 입시에서 논술을 없애기 시작하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쌓아온 논술교육의 근간이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국내에서 논술평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6년. 이후 논술은 숱한 변화를 거쳐 상당수 대학들의 입시전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논술은 사교육 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했고, 공교육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논술이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는 부작용도 따랐다.

사교육비 얘기는 일단 접어두자. 이 참에 논술교육의 효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논술교육은 세상과 사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Why?'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또 논술은 다양한 사고 능력과, 창의력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선 교과서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풍부한 독서가 전제돼야 한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자기주도적 학습능력)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논술교육은 암기나 결과 중심의 기존의 왜곡된 교육 및 학습 방식을 바로잡고,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를 육성하는데 꼭 필요한 영역이다. 이는 대부분 교육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논술 학습 및 교육은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입논술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년 가까이 이어왔다. 그동안 많은 교수들이 논술문제 발굴에, 교사들은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논술지도 방법을 찾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를 잡았다.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뽑느냐는 것은 대학이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이다. 하지만 대입제도는 현실에서 초중등교육의 방향을 좌우하는 '슈퍼파워'를 갖고 있기에 그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논술시험 폐지가 대학 전반으로 확산된다면 그간 논술교육에 쏟은 엄청난 사회적비용은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어렵사리 불붙은 책읽기 열풍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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