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위대한 나라'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한반도 38선 이남에 미군이 진주한 것은 그해 9월 8일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金九(김구) 주석이 그해 12월에 입국했으니 3개월이나 먼저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남조선 주둔사령관 하지 중장은 이튿날 맥아더 극동군 총사령관 명의의 군정포고문을 발표한다.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오늘 북위 38도 이남의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의 오랫동안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려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이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군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정치에서 손을 떼지만 한국전쟁 때 유엔군 자격으로 재주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후 常駐(상주)하게 된다. 주한 미군이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어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생생히 지켜본 만큼 그의 한마디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1980년 당시 위컴 사령관의 한마디는 한국을 들쑤셔 놓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들쥐와 같다"는 발언은 가히 압권이었다. 스칸디나비아 북부지역에 사는 레밍(lemming)이라는 들쥐는 '맹목적인 집단행동'으로 유명한데 선두의 뒤를 쫓아 꼬리를 물고 죽기 살기로 달려간다고 한다. 누가 먼저 하면 너도 나도 따라하는 한국인의 습성을 비꼰 말이다. 즉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말이었다.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당시 사정으로 봐서 '그래도 맞는 말'이라는 일부 평가도 받았다.

한국의 진보세력에 의해 反美(반미)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리언 러포트 사령관은 2006년 2월 이임사에서 "한미동맹을 사랑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했다. 입 다물고 있는 보수 세력에 대한 강한 불만이었다.

이후 부임한 버월 벨 사령관. 그도 오는 6월이면 임기를 마치고 전역하게 된다. 그는 白保國(백보국)이라는 한국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또 한국인 여아를 자신의 손녀로 입양했다. 그는 "한국국민은 도덕적 가치관이 투철하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대국을 이룩한 위대한 나라"라고 했다. 이제야 한국이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는가.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한 지 63년 만의 일이다.

윤주태 논설위원yzoot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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