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나라를 구한 성공한 지도자는…

표트르 대제/제임스 크라크라프트 지음/이주엽 옮김/살림 펴냄

역사를 돌아보면 한 국가의 운명이 바뀌는 시대가 있다.

마치 심장박동기의 시그널처럼 툭 하고 불거져 나오는 시대다. 조선의 역사에서 세종이나 정조가 그런 도약과 개혁을 주도했다면, 변방의 러시아가 유럽의 당당한 일원이 된 것은 표트르 대제(1672~1725)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인의 복장을 비롯해 수염을 기르는 습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관습 ·풍속에 일대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그는 화초 같은 군주가 아니었다. 야생에서 길들여지고, 스스로 야인(野人)을 즐긴 군주였다. 치세 초기인 1697년 한 국가의 최고집권자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감행했다. 서유럽에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자신도 사절단의 일원으로 변장해 서유럽 각국을 여행한 것이다. 당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통치를 맡겨둔 채로 말이다. 러시아 군주로서는 최초의 일이다. 이 일로 그는 견문을 넓히고 스스로 직공이 되어 조선술과 항해술을 배웠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가까이 한 인물들의 면모이다.

그는 러시아 가문의 자제뿐 아니라 선원과 다양한 국적의 용병, 조선공, 포병 등과도 교분을 나누었다. 나중에는 루테니아인(우크라이나인, 벨로루시인) 성직자, 독일인 법학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예술가와 건축가, 영국인 상인 등이 가세했다.

수십명에 이르는 이 동료 집단은 표트르가 러시아 해군을 창설하고, 육군을 근대화해 새 수도의 기초를 닦고, 국가를 급진적으로 재조직하며, 때로 과격한 수많은 사회문화적 개혁을 추진하는 후원자이자 강력한 참모 집단이 되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차르 알렉세이의 뒤를 이은 이복형 표트르 3세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일찍 죽자 이복누이 소피아 공녀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실권을 장악했다. 소피아는 그를 다른 이복형 이반과 함께 전무후무한 공동 차르로 앉혔다.

허수아비 차르로 권력을 위협받던 청소년기의 표트르는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 전쟁놀이와 뱃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발톱을 숨긴 은거의 생활이었다.

그가 집권한 시대는 결코 평안 시대는 아니었다. 서쪽에서는 스웨덴 왕국과 영토 대결을 벌여야 했으며, 남쪽으로는 오스만투르크와의 갈등이 계속됐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개혁세력이 내란과 모반을 획책했다.

그러나 표트르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정쟁을 승리로 이끌고 내란을 진압하면서도 정치를 개혁하고 도시를 건설하며 문화를 바꾸어나갔다. 그의 이런 노력이 집대성된 곳이 바로 '표트르의 도시'란 뜻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그는 불모의 땅을 거대한 도시로 바꾸고 지리적으로 불리한 이곳을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인 중심지로 만들었다.

지금도 러시아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새로운 러시아를 향한 끝없는 발전'이라는 비전을 보여주는 표트르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일리노이대학 교수인 지은이가 지은 표트르 대제 시대의 문화적 변혁을 다룬 '러시아 문화 속에서 표트르 대제가 일으킨 혁명' 3부작을 축약해 대중적으로 읽기 쉽게 펴낸 책이다.

우리가 성공한 지도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대의 과제를 스스로 풀어나간 현명한 지혜일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를 일으킨 위대한 표트르 1세의 삶과 꿈, 이상과 비전을 통해 그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절대 왕정을 확립하고, 러시아를 강국의 대열에 들게 한 것은 가장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문화 혁명'이었다.

지은이는 "건축, 시각예술, 언어 등 문화영역에서의 변화는 가히 혁명이라 부르기에 족하다"며 "문화혁명은 표트르 혁명의 총체적 결과물이었다"고 적고 있다. 260쪽. 1만2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