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글에는 사람의 냄새가 가득하다. 그 냄새는 인간에 대해 넘쳐나는 따뜻함이고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절창이다. 이미 그는'김병종의 화첩기행' 시리즈에서 화가라는 그의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유려하고 지적 풍부함과 예술적 상상력을 담은 필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라틴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의 필력과 예술적 감성은 더욱 빛이 난다.
헤밍웨이,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로맹가리,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에바 페론 그리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이르기까지 한때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라틴의 그 선명한 이름들은 그의 글 속에서 다시 걸어 나와 세상이 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를 전한다.
쿠바에서 그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단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총을 들었던 체 게바라와 용서와 화해를 갈구했던 예수에게서 비록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은 달랐지만 닮아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멕시코 혁명 기념탑을 보면서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지적한 혁명의 빛과 그림자를 짚어낸다. 혁명의 이율배반성이 권력의 야수성에 있다는 경고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이처럼 그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외로움 속에서 탄생한 탱고의 슬픈 역사와 세계적인 대문호 로맹가리가 왜 페루 리마의 북쪽 해안에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쓰게 되었는지가 선연히 다가온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여행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역사라 할지라도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역사는 진보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김병종의 이번 책은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간은 꿈의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을 남긴 채 오욕의 땅을 떠나야 했던 우리 시대의 가장 성숙한 인간, 체 게바라 역시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키웠던 사실은 떠남과 돌아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서울 출장길, 마지막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오면서 여전히 서울은 낯설다. 한강을 건너며 커피 한잔으로 늦은 저녁을 대신해야 하는 전쟁 같은 일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외투도 벗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본 차창 밖에는 전신주에 걸린 연을 두고 울며 돌아서던 소년이 삶에 지친 낯선 중년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 현실의 궁핍을 달래 줄 곳은 어디인가? 상처 없는 영혼은 또 어디 있으랴만 이 순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끝을 훌쩍 다녀오고 싶다.
280쪽.12,000원.
전태흥(여행작가·(㈜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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