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지음….'
지은이를 다른 사람이 아닌 1천400년 전 당태종 이세민으로 내세웠다. 이 말은 독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다. 지은이로 이세민을 내세웠으니 책 제목은 '이세민에 관하여' 혹은 '당태종 이세민'이 아니라 '왕도'이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당태종 이세민과 대화하는 느낌이 이 책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책은 당태종 이세민의 이야기만 묶은 것은 아니다. 이세민의 왕도정치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부국안민을 꾀했던 중국 황제 10인(무측천, 양견, 이세민, 조광윤, 쿠빌라이, 주원장, 한 무제, 건륭제, 유방, 강희제)의 인재 등용법과 정치방법을 장면별로 보여주고 있다.
책은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사례 중심의 장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 역사서나 역사철학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내용은 다채롭다.
왕도란 무엇인가, 현명한 군주의 자질, 군주의 품행과 세계관, 군대정비, 전쟁, 경제관, 국가 통치의 근간이었던 농업관, 충신과 간신을 가려내는 법, 탐관오리에 대해, 사적 청탁 대응법, 상벌의 공정성, 관리 선발법, 자식을 대하는 군주의 태도, 군주의 절제와 백성, 허영과 사치, 군주의 향락 등 군주가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망라하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
그는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유폐시켰다. 훌륭한 정치가였으나 패륜아였다. 나이 들어 신하들의 충언을 가볍게 여기고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켰고 여러 곳에 궁전을 지어 사치했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로, 오늘날 정치인들에게까지 귀감의 대상이다.
대체 당태종의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짧게 답하자면 이세민이 백성(당시 백성의 주류는 농민)을 두려워했다는 점일 것이다.
수나라 말 혼란기에 힘을 그러모은 이세민은 누구보다 농민의 힘을 잘 알았다. 이세민은 농민들이 평소 선하고 무력한 존재지만 분노가 극에 달하면 무서운 폭발력이 있음을 수나라의 잇따른 고구려 정벌실패와 농민의 분노에서 보았다. 그가 시종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것이 곧 나라와 군주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자물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세민이 사치를 경계했던 것도, 전쟁을 피하고 문치를 펼쳤던 것도, 요역과 세금을 가볍게 했던 것도, 끊임없이 충언에 귀기울였던 것도, 주변국과 평화공존을 추구했던 것도 그것이 백성을 위한 길이자 자신과 제국을 지키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소불위의 황제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았기에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가 됐다.
물론 그의 모든 정치적 업적이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가 이민족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개방정책을 통해 당나라를 세계국가로 만든 점은 군주로서 그의 뛰어난 안목을 보여주는 예이다.
책은 당태종 이세민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황제들의 사례도 인상적이다. 흔히 '인간말종'으로 불리기도 하는 유방의 미덕 하나.
'유방이 천하제일 명사인 여식기를 모셔 대사를 의논하고 싶었다. 여식기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유방은 다리를 쩍 벌리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옆에서 시녀들이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 여식기가 말했다. "오늘 주군께서 신을 부르심은 진을 도와 주군을 공격하라는 말씀입니까? 주군을 도와 진을 공격하라는 말씀입니까?" 유방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말이오?" 여식기는 답했다. "신에게 주군을 도와 진을 토벌하자고 말씀하실 거라면 어떻게 그렇게 무례한 태도로 신을 대하실 수 있습니까?" 유방은 잘못을 깨닫고 즉시 발 씻기를 중단하고 예복을 갈아입었다.'
미래를 보는 식견과 백성을 두려워하는 마음 외에도 군주에게 필요한 자질은 많다. 예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덕목일 것이다.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하다. 더불어 진솔한 대화에는 언제나 예의가 필요하다. 알맞은 예의를 갖추지 않을 때 상대와 나의 대화는 겉돌게 마련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당태종 이세민….
당(唐)나라 제2대 황제(재위 626∼649). 이민족을 제압하고 공정한 정치로 후세 제왕의 모범이 됐으며 백성의 안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문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찬했으며 필적이 뛰어나 사서 일부는 스스로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 모든 왕조의 근본정책은 '농업'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여긴다.'
이 옛말은 이 책 '왕도'에서도 두드러진다. 식량은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이고, 농업은 그 근본이다. 책에 소개된 10명의 황제뿐만 아니라 역사 속 모든 왕조는 농업을 근본으로 삼았다.
백성은 창고 안이 식량으로 가득 차야 예절과 두려움, 청렴과 부끄러움을 안다. 나라에 9년 동안 먹을 양식을 비축해두지 않으면 수해와 가뭄의 화를 면할 길이 없고, 민간에서 1년 동안 입을 옷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추위와 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 배부르고 따뜻해야 백성은 인의를 품는다. 반대일 경우 백성은 탐욕스러워지고 사람의 도를 잊는다.
그래서 역대 황제는 직접 밭에 나가 일을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짓기를 권했다. 시범만 보인 게 아니라 관리를 파견해 파종과 수확 등 농사의 때를 알려주었다.
무측천이 신료들을 위해 쓴 '신궤(臣軌)'에는 농업발전에 관한 담론인 '이인장(利人章)'이 있고, 양견의 '수서(隋書) 지리지'에는 각 지방 사람들이 어떤 농사를 지으며, 어떤 식으로 파종하고 수확하는지 자세히 담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이 메뚜기를 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정관 2년(628년) 당태종은 농경지를 시찰하다가 메뚜기 떼가 곡식을 갉아먹는 것을 보고 메뚜기를 잡아 씹어먹었다. 신하들이 '폐하, 병이날까 염려됩니다. 잡수시지 마십시오' 하자 당태종은 '백성이 식량으로 목숨을 보전하는데 너희가 짐의 마음을 갉아먹을지언정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며 메뚜기를 먹었다.
송태조 조광윤은 전쟁과 농사를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았다. 싸우지 않고 통일대업을 완성할 수 없었고, 농경을 장려하지 않고 국가가 안정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오직 황제들만의 임무는 아니다. 현대사회 기업의 근본, 아버지의 도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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